[헬스코리아뉴스 / 안상준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진 제약회사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M&A'를 빼놓을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과 신약 아이템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개발권·사업권 이전 등의 방법이 주로 사용되지만, 자산이나 회사 자체를 인수·합병하는 M&A 역시 많이 활용된다.
실제로 화이자·노바티스·사노피·로슈 등 상위 10대 글로벌 제약사 중 7개 제약사는 지난 20여 년 동안 대형 M&A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글로벌 제약사의 M&A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성장의 동력을 얻기 위함이다.
미국 제약기업 BMS는 지난 3일 세엘진을 약 730억 달러(한화 약 83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혈액암 치료제 '레블리미드' 등을 보유하고 있는 세엘진은 지난 2017년 기준 세계 암 치료제 시장 2위를 달리고 있는 명실상부한 항암전문기업이다. 현재 면역세포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제약사 다케다약품공업은 지난해 5월 영국 제약사인 샤이어를 약 640억 달러(한화 약 67조원)에 인수했으며, 10월에는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미국의 항암제 개발사 엔도사이트를 약 21억 달러(한화 약 2조원)에 인수했다. 지난 2017년에는 미국 제약기업 길리어드가 세포 치료제 개발 특화 기업 카이트파마를 약 119억 달러(한화 약 13조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글로벌 제약사, 전문성 강화 등 위해 적극적 M&A
이처럼 글로벌 제약사가 M&A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전문성 강화'다. 예컨대 BMS는 세엘진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암·염증성 질환·면역 질환·심혈관계 질환 분야에서 환자의 니즈에 부응하는 전문성을 갖추며 '특화된 제약기업'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한층 부각할 수 있게 됐다.
제약 산업이 가진 독특한 특성 또한 글로벌 제약사가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예컨대 글로벌 제약사들은 쉼 없이 고가 신약을 개발하지만, 그 가치는 특허가 인정되는 동안이다. 제네릭으로 불리는 저가 복제약이 출시되기 시작하면 자사 신약의 약값을 내리지 않을 방도가 없게 된다. 이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새로운 파이프라인 확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동력확보에 실패한다면 제아무리 튼튼한 공룡기업이라 할지라도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며 "기술·개발권·판권·생산시설·인력 등을 한번에 가져오는 '원샷-베팅'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기업이나 사업부 전체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내 제약 업계, M&A 소극적 … 사례 적고 금액도 적어
반면, 국내 제약 업계는 아직도 M&A에 소극적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M&A 사례 자체도 적고 금액도 소소하다.
지난해 있었던 SK의 미국 바이오제약사 엠팩 인수(약 8000억원 규모)와 한국콜마의 CJ헬스케어 인수(약 1조3000억원 규모), 그리고 2015년에 있었던 대웅제약의 한올바이오파마 지분(30%) 인수(1046억원) 정도가 국내 제약업계의 M&A 사례로 꼽힌다.
국내 제약업계가 이처럼 M&A에 소극적인 이유는 우선 규모 자체가 너무 작기 때문에 타사를 인수할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M&A 대신 소규모 벤처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신약후보물질을 사들여 자사의 성장동력으로 삼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걸 일명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고 하는데, 유한양행이 지난해 11월 약 1조4000억원에 글로벌기업 '얀센'과 거래한 비소세포폐암 후보 신약 '레이저티닙'도 국내 벤처기업 오스코텍으로부터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 제약업계의 M&A를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 자체가 '오너 또는 가족 경영’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은 사회 구성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바로 '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 경영권에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기회도 거부하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문화다.
글로벌 기업들이 살기 위해 M&A를 선택지로 한다면 국내 기업은 죽지 않기 위해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꼴이다. 말 그대로 소극적·방어적 경영의 전형이다.
국내의 한 중소벤처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 만연해 있는 오너십(ownership)은 비단 제약업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지금도 '가족경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굳이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너 욕심 버려야 기업성장 가능”
그렇다면 우리 제약업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M&A 활성화 방안은 뭐가 있을까.
기업경영 전문가들은 가치도 없는 주식을 다량보유하는 것보다, 그 주식의 가치를 100배, 1000배, 1만배로 키우려는 노력이 당장의 경영권 방어보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벤처네트워크 조영국 대표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풍부한 식견을 보유한 그는 "인수합병(M&A), 기술이전, 공동 사업화 등 신(新)기술, 신사업의 방향을 고민하는 제약사와 틀에 박혀 기계적으로 지금 하는 일만 하는 제약사의 기업가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도 국내 제약사 오너 2세, 3세들에게 이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제약사의 경우 오너의 지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분에 연연하기보다 우량기술 확보나 좋은 기업 인수를 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며 "외부의 우량한 기술과 아이템을 가진 기업을 '적절한 가격'을 지급해 들여오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M&A나 제휴를 위한 자금이 회사 내 유보자금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투자유치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 등도 활용해야 한다"며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신약과 바이오 분야 사업을 근간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제약·바이오 분야의 M&A는 지금보다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