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지부가 마련한 새 약가제도는 뭔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고가 약제 리스크쉐어링 도입 등 색다른 내용이 있는 듯하지만, 제약회사들의 피로감만 누적시키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의 발전이라는 장기적 안목보다 당장의 건보재정 안정화에 역점을 두다보니, ‘기업활동만 위축시키는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대부분이 이러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약값의 거품 제거’와 ‘리베이트 척결’을 명분으로 제네릭(복제약)의 계단식 약가제도를 폐지했을 때가 불과 지난해 일이다. 정부는 대신, 모든 복제약의 가격을 반값으로 낮추는 일괄 약가인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새로운 약가제도를 들고 나왔으니, 기업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약가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례적으로 수술을 해야하는 골치아픈 존재가 돼 버렸다. 정권마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손을 대다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는 기업들만 애를 먹는 꼴이 됐다.
그렇다면, 정부 기대만큼 효과는 있었을까. 리베이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을지 몰라도 건보재정을 위협하는 약값의 거품은 여전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약값의 거품이란, 높은 약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동일성분의 복제약물을 허가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견고한 약가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건보재정의 안정화를 꾀할 수 없다. 시장에 혼란만 줄 뿐이다. 차라리 식약처가 승인하는 복제약의 품목수부터 줄이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일 것 같다.
지금처럼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기 무섭게 최고 100개가 넘는 복제약이 쏟아지는 현실에서는 그 어떤 처방도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초로 개발한 우수한 품질의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에 대한 약값을 파격적으로 우대하고, 허가 품목수도 개발 순서대로 10개 내·외로 제한해야 한다. 신약에 대한 우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되면, 경쟁약물이 줄어들게 되니, 관련 부처가 총동원된 리베이트 소탕작전도, 기업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약가인하 정책도 되풀이할 일이 없는 것이다. 리베이트와 연관된 의사의 과잉처방과 그에 따른 건보재정 낭비 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약처 허가 약물에 제한을 두게 되니, 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신약개발능력도 함께 향상돼 정부와 기업, 국민이 바라는 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경쟁력이 취약해 도태하는 기업까지 정부가 구제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좀 과하게 말해서 동일성분의 복제약수만큼이나 많은 경쟁력 없는 제약회사부터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신약개발보다 복제약 판매에 열을 올리는 기업, 생명산업에 대한 철학 없이 운영되는 기업, 과장광고 등으로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는 기업 등 제약회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제약회사답지 않은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기업들이 정리되어야 제대로 된 제약회사들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제약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차대한 산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