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산부인과가 무너지는 이유”
“필수의료 산부인과가 무너지는 이유”
△저수가 △안전하지 않은 진료환경 △워라밸 붕괴가 원인

“산부인과 의사가 모든 책임 지고 아이 낳게 할 수는 없어”
  • 박원진
  • admin@hkn24.com
  • 승인 2023.10.22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50대 여성이 얼리지 않은 자기 난자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무관함) [출처=헬스코리아뉴스 D/B]
사진은 특정기사와 무관함. [헬스코리아뉴스 D/B]

[헬스코리아뉴스 / 박원진]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과 임신을 도와주는 것이지 모든 책임을 지고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부인과와 같은 필수의료가 무너지는 이유로 △저수가와 △안전하지 않은 진료환경, △워라밸 붕괴 등을 꼽았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살리기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산과 의사들의 진단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22일 오후 서울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제16차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산과 필수의료 붕괴 이유와 대책을 제시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0.78명이 심화되면서 지방 곳곳에는 문을 닫는 대형 산부인과가 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25년간 분만을 책임져왔던 문화여성병원은 올해 8월 30일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전국의 의료기관 수는 2020년 517곳에서 2022년 470곳으로 약 9%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2년(739곳)과 비교하면 36.4%(269곳)가 줄었다.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50곳이다.

 

분만가능 전국 의료기관 수 갈수록 감소 

전문의 구하는 것 부터 ‘하늘의 별 따기’

진료를 하고 싶어도 전문의를 구하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특히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171명에서 7명으로 전체 6.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분만을 하는 산과보다는 암이나 내분비질환 등 부인과를 선택하는 의사가 많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중 7곳은 전문의가 없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필수공공의료서비스에서 필수과목 진료를 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부인과가 없는 공공의료기관은 인천광역시의료원(종합병원, 백령병원 포함), 해군해양의료원(병원) 등 총 7곳이다.

 

경희대병원 제5중환자실 신생아 전문 소아청소년과 최용성 교수와 김해영 책임간호사가 미숙아의 상태를 살피며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모습.
경희대병원 제5중환자실 신생아 전문 소아청소년과 최용성 교수와 김해영 책임간호사가 미숙아의 상태를 살피며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모습.

“제왕절개 분만비,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낮아”

“의료행위 형사처벌 시 필수의료 유지 못해”

산부인과 의사들은 가장 큰 문제로 저수가를 꼽는다. 우리나라의 제왕절개 분만비는 약 250만 원으로 2017년 기준으로 미국 약 1500만 원, 영국 약 1200만 원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약 256만 원)보다도 낮다는 것이 의사회의 설명이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가 내놓은 2022년 자료를 보면 의원급 산과 의료기관의 원가보존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17년 64.5%이던 것이 2018~2019년 54.9%, 2020년 53.7%, 2021년 52.9%으로 경영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은 “우리와 유사한 건강보험 구조를 가진 일본만 봐도 분만수가가 5~10배 높다. 같은 10억대 배상판결이 일본에서 발생했다면 수가가 10배 이상 되니 그만큼 병원의 부담이 덜하다”며, “우리나라의 분만수가도 미국기준으로 설정하여 힘들더라도 보람과 보상을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하지 않은 진료환경도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외면하는 이유다.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필수의료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산부인과 4년 차 전공의 82명·전임의 28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중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평균 2명의 의사가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높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다. 이중 67.5%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일본은 15.8%가 유죄 판결을 받았고 영국은 형사재판까지 넘어가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영국의 경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과실치사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사는 7명이었으며 이중 4명이 유죄 판결을 받는데 그쳤다.

의사회는 “저출산 시대는 베이비붐 시대와 달리 고위험 임신이 많고 의료분쟁은 증가하는데 보상이 적다 보니 민간병원들이 폐업하고 있다”며, “분만사고 소송에서 1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만 해도 평균 4년이 걸렸고 최종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7~10년이 걸린 경우도 있다. 재판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오랜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산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없는 진료과로 잘 알려져 있다. 분만의 특성상 24시간이 응급이다. 최근엔 산과 의료 인력 감소로 1인당 당직 횟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분만병원, 대학병원에서 조차 50~60대 의사 3~4명이 돌아가며 당직을 하고 있다.

환자들은 여의사 분만을 선호하지만 자신의 가정을 돌보며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여의사들은 24시간 대기해야하는 분만실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다. 의사회는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워라밸 붕괴도 산부인과가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밝혔다. (참고로 환자들이 여성 전문의의 진료를 선호하면서 신규 산부인과 남자 전문의 수는 2007년 91명에서 2023년 7명으로 90% 이상 급감했다.)

 

산모출산신생아
사진은 특정기사와 무관함. [헬스코리아뉴스 D/B]

“수가 정상화로 의료인력 유입해야”

“선의로 이뤄지는 의료행위 형사적 면책 필요”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날 간담회에서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원가 이하의 수가, 특히 필수 의료 관련 수가를 정상으로 만들어 의료인력의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인구가 밀집되지 않는 지역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더라도 ‘최소한의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분만실’을 유지하도록 국가가 비용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의료 수가, 분만실 운영과 관련한 각종 규제, 분만 관련 상급병실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분만 의사의 경우 밤낮 병원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고, 안전을 위해 구비해야 할 인력이나 시설이 막대하다. 이에 대한 정당한 수가가 반영되지 않으면 결국 분만인프라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사회의 주장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분만수가도 미국기준으로 설정하여 힘들더라도 보람과 보상을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분만사고 보상금도 10억 원으로 상향조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의료분쟁조정법을 통해 분만사고에 대해서 정부가 산모에게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고 이후 들어가는 막대한 개호비용(간호·간병비용)과 이미 분만사고 소송에서의 손해배상 금액이 10억대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최대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의사회는 “보상금의 상한을 현실에 맞게 10억으로 대폭 상향해야한다”며, “이는 저출산 대책에 들어가는 연간 15조 원의 돈 중 0.1%만 써도 기금은 충분히 해결하고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사고 발생 시, 종합공제에 가입돼 있다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선의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형사적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의사회는 “분만 시 의료과실에 대한 민형사상 가이드라인 설정 협의를 복지부에 요청한다”며, “분만사고 시 의료진과 환자 측의 갈등제거, 민형사상 재판 시 판결을 표준화하여 사법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산부인과 의사의 분만현장 복귀를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CCTV설치 의무화법, 필수의료 살리기 악재 될 것”

한편,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올해 9월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개정의료법)이 필수의료 살기기 정책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정의료법은 수면마취 등 의식 없는 환자를 수술할 때,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고, 최소 30일 동안 보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의사회는 이와관련, “△환자 및 의료진에 대한 인권침해 △수술시 집중력 저하 △의사들의 분만수술 기피 △환자와 의사간 신뢰 저하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필수의료 살리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사회는 또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 대책 중 하나로 거론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도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과목에 의사들이 쏠려 있는 게 문제”라며, “필수의료 인력 확보와 의대 증원은 다른 영역의 문제로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회사명 : (주)헬코미디어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2길 45, 302호(상암동, 해나리빌딩)
      • 대표전화 : 02-364-20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슬기
      • 제호 : 헬스코리아뉴스
      • 발행일 : 2007-01-01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17
      • 재등록일 : 2008-11-27
      • 발행인 : 임도이
      • 편집인 : 이순호
      • 헬스코리아뉴스에서 발행하는 모든 저작물(컨텐츠,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제·배포 등을 금합니다.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슬기 02-364-2002 webmaster@hkn24.com
      • Copyright © 2024 헬스코리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hkn24.com
      ND소프트
      편집자 추천 뉴스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