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를 주장하던 다국적 제약사들이 알고 보니 두 얼굴의 지킬 박사였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다국적 제약사들의 부당행위가 하나 둘 탄로나고 있는데 그 끝이 어딘지 아직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내세우는 말과는 달리 지식재산권을 남용하거나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제네릭 제품 출시를 늦추기 위해 제약사에 뒷돈을 주는 행태가 이들의 기본메뉴였다. 이들은 실정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함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치명상을 입게 됐다. 결국 제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다.
리베이트 제공 건에서 자유로울 것 같았던 다국적사들이 국내 제약사에 비해 하나도 나을 게 없다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오히려 새로운 리베이트 전달방법을 개발하기까지 했는데 그 신종수법이 놀랍기만 하다.
국내 토종제약사들이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3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이 다국적사들은 늘어난 판매관리비를 무기로 무리수를 두어가며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것이다. 머리깎여 힘 못쓰는 삼손 꼴이 된 토종제약사들이 억울해 할만도 하다.
그러지 않아도 다국적 제약사들의 모임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얼마 전 한국내에서 투자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의약품 가격규제를 완화해주고 신약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달라고 정부에 주문하기도 했다. 어느 나라든 의약품 가격은 정부통제를 받고 있는데 자신들에게는 특혜를 달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들도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참조가격제에 대해서도 연구개발투자에 장애가 되니 자유시장 가격제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내 밥그릇 챙기기에 철저했다. 신약을 빙자해 약값을 제 맘대로 정하게 해달라니 참으로 염치없는 처사다. 다국적사들은 이미 국내 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업·마케팅에 대한 정부 규제를 덜 받고 있는 터다.
국내 제약사들은 지난해 쌍벌제 시행 여파로 판매관리비가 2009년에 비해 5% 감소한데 반해 규제가 느슨한 다국적제약사는 반대로 평균 7% 이상 늘었다. 화이자, GSK, 노바티스, MSD, 사노피아벤티스 등 상위 제약사들은 1100억~1700억원의 판관비를 썼다. 특히 화이자는 판관비가 1744억원으로 다국적사 중 가장 많았는데 겨우 4억원의 법인세를 냈을 뿐이다.
매출이 크게 늘어난 상위 제약사들의 판관비가 비교적 크게 늘어났다. 쉐링푸라우는 무려 65.2% 늘어 다국적제약사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다국적사들은 이 늘어난 판관비를 ‘역지불 합의’에 사용한 정황이 당국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판관비 증액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역지불 합의’는 신약 특허권자가 제네릭 출시를 연기하는 조건으로 다른 제약사에 대가를 주는 행위다. 다국적사들이 건당 매년 수십억원씩 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새로운 시장을 막아 경쟁을 제한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특허권이 만료됐는데도 제네릭이 생산되지 않으면 건보공단이나 환자는 비싼 오리지널 약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돈으로 다국적사의 지갑을 채워주는 셈이다. 다국적사들의 장난에 국민들 허리가 휘는 꼴이 됐다. 일부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내 제약사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한편으로는 특허침해 소송을 내고 다른 한편에서는 뒷돈을 주고 경쟁약을 철수하도록 하는 파렴치한 2중 수법을 쓸 정도로 교묘했다.
지난달엔 한국오츠카가 리베이트 제공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한데 이어 또 다른 다국적사가 2008년부터 3년간 전국 병의원 의사 697명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제약사 대표 등이 조사를 받고 있다.
더욱이 다국적 제약사들은 지난해 11월 쌍벌제 시행 이후에도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져 정도영업이 말뿐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들도 잘못됐지만,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적 모순을 없애야 한다.
당국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국내 제약시장을 장악해온 다국적사들의 불법-부당행위를 철저히 조사해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다국적사들이 더 이상 한국 제약시장을 놀이터 삼아 장난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국적사들 또한 중국과 태국 등이 왜 머크, 사노피아벤티스 등 거대 다국적사들에 대해 약값인하 압력을 가하며 특허권을 정지시키고 복제약 생산을 허용했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중보건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의약품 특허를 파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둔 이유도 특허권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