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사회 의약품시장…국내 제약사는 "그림의 떡"
고령화사회 의약품시장…국내 제약사는 "그림의 떡"
밀어붙이기식 약가정책, 토종제약사 불안감 가중…다국적제약사 점유율 50% 초읽기
  • 임호섭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07.03.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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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자유무역협정)라는 거대한 파고속에 정부의 각종 약제비 절감방안이 속도를 내면서 한국의약품 산업의 고성장 시대는 사실상 종착역에 달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당장 일반의약품 복합제가 지난해 11월1일부터 비급여로 전환되는 등 약가 거품을 제거하려는 정부의 칼날은 갈길 바쁜 토종제약사들의 목줄을 여지없이 조이고 있다. [자료실 의약품정보방 참조]

반면, 한국시장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비교적 느긋한 모습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포지티브 리스트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던 그동안의 전례에 비춰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다.

국내 제약업계의 희생(?) 없이는 추진할 수 없는 정부의 약제비 절감방안은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가. 지금의 정책방향을 놓고 일각에서는 ‘토종 제약산업의 종말’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국내 제약업계는 또다른 시험무대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약가재평가+포지티브리스트, 국내 제약업계에 ‘사약(賜藥)’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값인하방안(약제비 적정화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약가재평가제도와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다. 전자는 식약청에서 허가를 받은 약물이 최초로 보험약값을 받게 되면 일정 시점이 지난 후 재평가를 통해 다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다. 후자는 가격 대비 효능이 좋다고 판단되는 약물만 선별적으로 건강보험목록에 등재해주는 제도다.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제약업계 입장에서 보면 불편하기는 두 제도 모두 다를바 없다.

▲다국적 제약사에 백기 든 ‘약가재평가제도’

이 제도는 건강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고 소비자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2년 8월 도입됐다. 제도 도입 후 우리 정부는 보험약값이 등재된 지 3년이 지난 품목을 대상으로 매년 약값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영국등 선진 7개국(흔히 ‘A7’이라고 한다)의 평균 도매(공장도) 가격(A7 조정평균값)보다 높은 약값을 내리고 있다. 다시말해 최초 보험등재한 약물의 ‘A7 조정평균값’이 3년 동안 크게 떨어졌다면 해당 약물의 보험가격도 그에 비례해 인하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제도는 ‘A7 조정평균값’이 한국의 약값보다 싸졌을 경우에만 인하가 가능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해당 약물의 ‘A7 조정평균값’이 한국보다 비싸더라도 3년 동안 크게 떨어졌다면 그 비율만큼 한국에서의 약값도 인하하는 ‘A7변동률’을 적용키로 하고 제도를 개정하려 했으나 미국측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실현하지 못했다.

‘A7변동률’ 방식은 초기에는 약값이 비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값 하락률이 높은 신약에 특히 불리한 제도여서,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등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해왔다.

특히, 우리 정부는 보험약값 산정의 원칙을 ‘A7 국가의 기준약가 책자’에 두고 있는데, 이 약가집은 현지에서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가격보다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내에서 자사의 수입약을 판매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그만큼 폭리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약값재평가제도는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기업들에 ‘백기’를 들고 복제약(일명 제네릭) 일색인 국내사만 때려잡고 있다는 지적은 이런 영향이 크다.

▲포지티브리스트, 외국제약사 보다 국내 제약사에 불리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3일, 값싸고 질좋은 약만 보험에 등재시키는 일명 ‘포지티브리스트(선별등재목록)’ 시행을 전격 발표하고 현재 하나 둘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에따라 식약청 허가만 받으면 거의 예외없이 보험등재가 가능했던 기존의 ‘네거티브’식 보험약가 인정제도는 사라지게 됐다. 이 제도는 미국, 프랑스, 스웨덴, 호주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OECD 국가의 80%인 24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편적인 약값결정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고령화 시대, 만성질환자 급증으로 보험재정이 크게 악화될 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에서 너무 늦게 도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회사 또는 의약품 수입업자와의 직접적인 가격협상을 통해 보험에 등재할 약값을 결정하는 것으로, 제약업체가 신약을 개발해도 경제성 등 종합평가에서 적정한 가격과 효능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값 결정 구조는 다국적 제약사보다 국내사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제약업계 주변의 시각이다. 신약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어서 신약개발에 앞서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배짱협상’이 가능하지만, 복제약이 밥줄인 국내 제약사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해야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정부는 현재 보험에 등재된 복제약을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방침이어서 국내 제약사들이 느끼는 압박의 강도는 클 수밖에 없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국내사가 보유하고 있는 보험약의 4분의 3은 비급여로 전환돼 사실상 시장퇴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의 약제비절감방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의료기술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 개정안에 따르면 특허만료된 신약(오리지널 약)의 복제약이 최초로 건강보험에 등재되는 경우, 지금까지는 5번째 등록되는 복제약까지 해당 오리지널약값의 80%를 인정받았으나 앞으로는 이 보다 더 낮은 가격을 받게 된다.

예컨대, 해당 신약의 가격은 복제약이 등재되는 시점부터 당초보다 20% 인하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복제약값은 5번째 등재되는 약까지 인하된 신약값의 80%를 인정받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즉, 특허기간(20년)이 지나면 오리지널 약값도 내리지만, 이와 연동해 우후죽순처럼 난립해 있는 복제약값도 내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의지다.

특허만료된 한가지 성분으로 이름만 다른 쌍둥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왔던 국내 제약사들은 변화된 시장구조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고위관료 출신 진두지휘…맥못추는 한국제약협회

설상가상으로 제약사들의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제약협회(회장 김정수)마저 맥못추는 기구로 전락, 국내 제약사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국계 제약사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만을 KRPIA(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회장 아메트 괵선 화이자 한국법인 사장)나 자국 대사관 등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약가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국내사들이 의지하고 있는 한국제약협회의 요구는 거의 먹히지 않고 있다.

실제로 제약협회는 그동안 “약제비 절감방안이 국민의료비 부담을 크게 가중시킬 것”이라며 정부측에 역공을 펴왔지만, 복지부 반응은 썰렁했다. 국민여론도 꼼짝하지 않고 있다.

그런 사이 토종제약사들의 신음은 깊어만 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반의약품 복합제 742품목이 비급여로 전환되면서 국내 상당수 제약사들은 한바탕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는 이를통해 1000억원 이상의 약제비 절감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해당제약사들은 그만큼의 손실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반약 복합제가 비급여로 전환되면서 처방까지 감소, 약사회로부터 해당약물의 반품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보험급여가 가능한 신약 라이센싱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대로 가면 종말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올 2월부터 비급여로 전환되는 파스류 생산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파스류 비급여 전환…태평양제약·SK케미칼 등 타격

정부의 파스류 비급여 전환조치는 무분별한 약물 오남용과 그에 따른 보험재정 손실을 막겠다는 것으로, 복지부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정책 시행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따라 태평양제약 등 파스류를 주력 품목으로 하는 제약사들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태평양제약은 ‘케토톱’ 시리즈로 지난 2005년 한해에만 39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매출(1048억원)의 37%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에도 전체 매출(1224억원)의 35%인 437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파스가 비급여로 전환되면 2005년에 처음으로 달성한 태평양제약의 ‘1000억원대 매출기록’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제일약품(케펜텍 시리즈)과 SK케미칼(트라스트) 등도 파스류 매출액이 100억원대를 훌쩍 넘어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되지만, 정부 조치에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기는 태평양제약과 다르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한해 1000억원대인 파스류의 급여 비율은 60%에 해당할 만큼 비중이 높지만,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회장과 부회장이 복지부 고위관료 출신인 제약협회를 믿고 있을 수도 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처럼 급반전되면서 증권업계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국내 제약산업의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고령화사회 고성장 의약품시장…국내 제약사엔 그림의 떡?”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책임연구원은 “정부의 약제비적정화 방안 중 포지티브 시스템보다 단기적인 파급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특허 만료 의약품에 대한 가격 인하’가 될 것”이라며 “만약 약가인하범위가 기 등재 제품까지 확장된다면 제네릭 제품의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의 타격은 매우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보증권 이혜린 책임연구원도 최근 본지의 ‘애널리스트 전망대’ 기고문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지난해 이후 중요한 구조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최대 고비다. 안으로는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밖으로는 한미 FTA라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면서 “인구 고령화 사이클과 맞물린 의약품 수요 확대의 기회 국면에서 나타났던 고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라며 “개량 신약 및 자체 신약개발 능력 확보, 틈새시장을 겨냥한 니치(niche) 블록버스터 개발, 수출활로 개척 등 다양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정부의 정책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만성질환자가 급증하면서 의약품 수요 증대 요인이 정책 변화 등 시장의 성장을 억제하는 요인들을 넘어서 올해도 국내 의약품 시장은 크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상존한다.

정부의 정책 목표가 약제비의 절대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의료비에서 약제비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2005년 29% → 2011년 24%), 의약품 시장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예기다.

전문가들의 이같은 분석은 약물 소비가 활발한 고령인구 증가와 삶의 질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 증가 등으로 의약품 시장 자체는 성장하겠지만, 그것이 개별 제약사들의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시장 확대에 따른 혜택은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의 일부 상위제약사에 돌아갈 것이라는 원론적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 올해 두자리수 성장목표

국내에 들어와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경우 대부분 올해 두자리수 성장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20%대의 고속성장을 이룬 GSK는 올해 작년(3595억원) 대비 17% 늘어난 4200억원의 매출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23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노바티스도 올해 내부적으로 10% 대 중후반의 성장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처음으로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MSD는 공식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10% 초반의 성장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지난해 공히 1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도 올해 17% 성장한 20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라면 다국적 제약사들은 향후 2~3년 이내에 한국 의약품 시장을 50% 이상 점유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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