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火病)과 명절 증후군
화병(火病)과 명절 증후군
  • 이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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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15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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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정모씨(59)는 가슴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하고 목이 꽉 막혀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설 준비를 하던 중 시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들은 뒤였다.

정씨는 평생을 맏며느리로, 두 자녀의 어머니로,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왔다. 시어머니는 환갑이 다 된 정씨를 새댁인 듯 살림살이 뿐 아니라 자녀들 교육까지 가르치고 훈계를 하시는 편이고 남편은 성실하고 효심이 깊지만 말수 적고 매사에 상의 없이 혼자서 정하며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라 정씨는 속 상하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살았다.

5년 전부터 머리가 무겁고 숨이 가쁘고 가슴을 돌로 누르는 것 같은 증상이 있어 협심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한 후 증상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수시로 증상이 일어났고 팔다리가 저리고 기운이 없어졌다.

설 준비를 하던 중 목이 꽉 막혀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아 입원하였지만 심장 초음파 및 심전도, 심장 핵의학 검사에서는 5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관상동맥의 일부분이 좁아져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정씨는 ‘화병’이 의심되어 정신과로 의뢰되었다.

화병, 그리고 명절 증후군

화병이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던 하나의 병명이며 우리나라에서만 흔한 특징적인 문화 관련 증후군이다. 화병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또는 정 같은 정신사회적 문화에서 발병한다. 수년에 걸친 만성적 경과를 밟아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인성 원인을 인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남편과 시부모와의 관계로부터 야기되는 고통스런 결혼생활, 가난과 고생, 사회적 좌절, 개인적 성격특성으로부터 오는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 절망 등의 감정반응이 특징적 원인이다. 그러한 감정반응을 계속 억제하고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서 화병이 발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1세기 한국의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히게 된 명절 증후군이란 명절 동안 겪게 될 가족 간의 갈등을 미리 예측하여 생기는 우울, 불안과 같은 맘고생 혹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증상들을 일컫는 말로서, 주로 명절을 앞둔 며느리들이 겪게 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도 해당된다.

명절 증후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 증후군 중 하나인 화병의 양상과 매우 유사하다. 화병은 몸의 열기, 목과 가슴에 덩어리가 찬 느낌, 가슴 답답함, 가슴 속의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과 같은 특징적인 신체 증상들과 우울, 비관, 불안 등의 정신증상, 하소연이 많음, 정신이 없다, 가만있지 못한다, 뛰쳐나가고 싶다 등의 행동증상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할 만큼 빠른 근대화를 이룩한 사회이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구조 역시 빠르게 변화하였으며 특히나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 의존적이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가 미덕으로 여기는 ‘가족중심’, ‘가족주의’는 빠르게 변화한 가치관이나 이미 변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과 그렇지 않은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갈등은 가족이 모이는 기회 - 명절, 기념일 등 - 을 통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며느리는 온 가족이 모여 즐거움을 나누어야 하는 시기에 몸살이 나도록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고,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순종적이던 당신들의 젊은 날과는 달리 하고 싶은 말은 직설적으로 다 하고 마는 신세대 며느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명절이 곤혹스럽다. 남편 역시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며 숨죽이고 지내게 된다.

명절증후군 이겨내기

명절증후군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가족이란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 명절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고와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노력한다. 또한 명절 준비를 할 때에는 주위 사람들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인 부담감을 풀도록 노력한다. 마음을 연 대화야말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남녀 간에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보기와 음식장만, 설거지, 청소 등에 남녀가 함께 참여하고 함께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명절 전후에 고생하는 주부에게는 남편 등 가족의 따뜻한 격려와 배려가 필요하다. 보상의 표현으로 선물을 하거나 여행가기 또는 집안일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잠시라도 적절한 휴식을 자주 취해서 육체적 피로를 줄인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초래되는 근육긴장의 이완을 위해 심호흡을 하거나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풍성하고 즐거워야 할 명절, 가족 구성원 서로 간에 단점을 찾아내고 헐뜯으며 보내기 보다는 서로의 고생과 수고를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정신과 이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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