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공항에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다가가 웃으며 첫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전 경희의료원 러시아어 통역 니나입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불안함에 공항을 둘러보던 파란 눈의 주인공은 비로소 안도감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메일과 전화상으로만 연락했던 사람과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어느덧 5 개월이 다 되어간다. 2009년 8월. 러시아 통·번역 및 행정직 공개채용으로 경희의료원에 입사했다. 우연히 러시아어 통역을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병원에서도 러시아어 통역을 뽑네.’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합격했다는 기쁨은 잠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다. 러시아 환자분을 여기 저기로 모시고 다니며 진료 안내와 통역을 하고 나면 퇴근 시간도 못되어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매일 밤 병원이 꿈속에 나왔고 수술대에 러시아 분이 아닌 내가 누워있는 꿈도 자주 꿨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을 했고 어느 순간 꿈에서도 병원이 공포스러운 공간이 아닌 내 직장이 되어 있었다. 사실 꿈에서도 많은 러시아 환자를 안내했다. 나의 주된 업무는 러시아에서 방문하는 환자들이 입국하면서부터 출국할 때까지 편안하게 진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러시아에서 전화나 이메일로 진료의뢰를 받으면 건강상 문제 여부, 어떤 진료가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이에 맞게 진료 일정을 확정하여 의뢰환자에게 비용을 포함한 진료 관련내용을 전달한다. 후에 한국행을 결정하면 호텔예약까지 마무리한 후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는 것부터 러시아환자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공항으로의 마중은 항상 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하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리 환자와 친해질 수 있고 그 분의병력을 비롯한 사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데다 덤으로 억양과 발음에 익숙해질 수 있어 좋다. 러시아 환자분 입장에선 도착하자마자 통역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마음을 푹 놓게 되고 상당히 호의적이 된다. 이렇게 되면 향후 진료과정에서 혹시라도 불편이 발생해도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는다.
러시아 환자분이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온전히 나는 그분의 귀와 입이 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러시아에도 영어를 잘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 분들은 영어소통이 쉽지만은 않다. 통역서비스 사례가 늘어날수록 안내에도 노하우가 생기고 무엇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도 지혜가 생긴다.
러시아 분들에게는 경희의료원 의료진의 진료수준과 서비스정신도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되는 통역사로서의 내 역할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일하면서 얻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람’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고생을 하며 해외업무의 기틀을 잡아준 대외협력팀, 그리고 러시아 환자 유치를 위해 힘써주는 많은 직원들이 지원하주는 덕에 작년 하반기부터 러시아 환자는 눈에 띄게 늘었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러시아 환자들.
사실 하루 종일 함께 하며 통역을 하다보면 아무리 무뚝뚝한 러시아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열게 된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나는 그분의 친구가 되기도, 딸이 되기도, 손녀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간 꾸준히 우리 병원을 방문한 러시아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새해 축하 인사를 했다. 모두들 반가워하고 의료원 직원들의 안부를 묻고 경희의료원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빠뜨리지 않는다.
입소문은 감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장기적으로 러시아 에이전시, 병원들과 협약을 체결해가며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할 통로가 마련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환자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고객 감동’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란 눈의 러시아 분들이 경희의료원을 찾게 될 것이다. 러시아 분들의 정확한 귀와 입이 되어 드리고 ‘친절한 니나’가 될수록 오늘도 최선을 다해본다. [경희의료원 대외협력팀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