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지난 2012년 이후 세계 의약품 시장을 지배한 약물은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adalimumab)’였다. 지난 2002년 12월 출시된 이 약물은 2012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 순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후 2022년까지 코로나로 인한 백신을 제외하면 순수 치료제 기준으로 무려 11년간 제왕적 지위를 누렸다. 세계 의약품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특허 만료가 없었다면 ‘휴미라’는 아마 지금도 세계 1위를 차지했을 약물이다. 업계에서 ‘휴미라’를 전설적 약물에 비유하는 이유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휴미라’ 이후 세계 의약품 시장 1위 자리는 자연스럽게 미국 머크(Merck,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가 물려받았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250억 1100만 달러, 15일 환율 기준 우리 돈 약 34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왕좌 자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키트루다’는 ‘휴미라’처럼 오랜기간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미국 증권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신 그 자리는 이중특이성 항체가 대체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증권사 라일리 파이낸셜(B. Riley Financial)은 14일(현지 시간), 제약·바이오 전문매체 바이오 스페이스(Biospace)와의 인터뷰에서 이중특이성 항체의 ‘키트루다’ 대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라일리 파이낸셜은 “특허 만료에 따른 복제약 공습으로 ‘키트루다’가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며 “그 자리를 오랜기간 수성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트루다’의 미국과 유럽 물질특허는 각각 2028년, 2030년 이후 만료될 예정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우 MSD의 에버그리닝(공격적으로 여러 특허를 출원하여 독점권을 연장하는 행위) 전략으로 인해 복제약의 실질적인 미국 출시 시점도 아직은 미정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업계는 적어도 2030년 중반을 안팎으로 ‘키트루다’의 복제약 시장이 완전히 개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둔 듯 MSD 또한 2030년 중반 이후 ‘키트루다’의 매출이 최소 20억 달러(한화 약 2조 7000만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라일리 파이낸셜은 ‘키트루다’를 대체할 약물로 이중특이성 항체를 꼽았다. 이중특이성 항체는 2개의 다른 항원에 동시 작용하여 치료의 효과를 더욱 높인 약물이다. 주로 자가면역 질환과 암 치료에 활용된다.
라일리 파이낸셜은 특히 주변 환경 내 면역 세포가 극히 드문 비면역 종양(Cold Tumor)에 있어 이중특이성 항체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령 한 항체는 암 세포에 결합하고 다른 항체는 암을 공격할 수 있는 면역 세포를 유도하여 비면역 종양에도 면역 치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트루다’를 비롯한 면역관문 억제제가 비면역 종양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중특이성 항체가 ‘키트루다’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퀵 리서치(Kuick Research)에 따르면, 이중특이성 항체 시장은 오는 2029년 500억 달러(한화 약 68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키트루다’가 올린 전체 매출(약 34조 원)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중특이성 항체 약물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연도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이중특이성 항체 허가 현황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까지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이중특이성 항체 약물은 ‘블린사이토’(Blincyto, 성분명: 블리나투모맙, 2014년 12월)와 ‘헴리브라’(Hemlibra, 성분명: 에미시주맙, 2017년 11월) 등 2개에 불과했지만 2021년부터 2024년 9월까지 허가된 약물은 13개로 부쩍 늘었다.
여기에 현재 임상 단계에 돌입한 이중특이성 항체 약물 후보물질도 360개에 달한 것으로 헬스코리아뉴스 취재결과 확인됐다. 그야말로 이중특이성 항체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또한 이중특이성 항체 개발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은 각각 ▲HER2+PD-1 항체 ‘BH2950’과 ▲4-1BB+HER2 항체 ‘YH32367’을 임상 1/2상 단계에서 평가하고 있다.
업계의 이중특이성 항체 개발 열풍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라일리 파이낸셜은 “현재 이중특이성 항체는 ‘키트루다’의 지배적인 위치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며, “모든 기관 및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매력적인 제제”라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