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국내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5년 생존율이 2배 가량 크게 높아졌으나,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어려워, 환자 생존율 개선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업인 한국아이큐바아(IQVIA)는 14일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치료 접근성(보험급여)을 높이면 환자 사망과 질병 진행을 지금보다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의 리포트에서 이같은 연구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리포트에 따르면, 혁신적인 치료제의 도입으로 지난 20년 간 국내 다발 골수종 환자의 5년 생존율이 크게 개선되어 2005년 이전 30%에 머물던 수치가 2016-2020년에는 51%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혁신적인 치료 접근성이 높은 미국(5년 생존율 60% 육박)과 같은 타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다발 골수종은 골수에서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암의 일종으로 골 통증과 빈혈, 고칼슘혈증, 신장기능장애 등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다발 골수종 환자 1만 1550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차 치료를 받은 환자의 50%가 2차 치료를 진행했고, 약 20%는 4차 이상의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에서 볼 수 있듯, 다발 골수종은 재발이 빈번할 뿐만 아니라 치료 실패 후 다음 단계의 치료를 진행할수록 치료반응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예후가 상당히 불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재발 및 불응성 다발골수종으로의 진행을 지연시키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효과적인 치료 대안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물론 지난 30년간 다발 골수종의 치료 환경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초기의 단순 화학요법에서 프로테아좀 억제제, 면역조절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복합요법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항-CD38 단일클론항체와 BCMA(B세포성숙항원) 표적 면역치료와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되었다. 새로운 치료법들은 특히 재발 및 불응성 다발 골수종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생존율 향상과 삶의 질 개선에 상당한 잠재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치료 접근성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한국은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에서 권장하는 25개의 다발 골수종 치료제 중 절반가량인 13개 약물만이 급여 품목에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치료제 접근 제한은 특히 질환 초기 단계 환자들의 치료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국내 다발 골수종 환자들 중 후속 치료 단계로 진행하지 못하는 비율이 각 치료 단계마다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효과적인 치료법의 초기 단계 사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IQVIA는 이번 보고서 작성을 위해 별도의 예측 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새로운 치료제의 도입은 환자 치료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항-CD38 단일 클론 항체 치료제가 조혈모세포 이식 적합 및 비적합 다발 골수종 환자의 1차 치료에 급여될 경우 2024년부터 2028년까지 국내 다발 골수종 환자 968건의 사망과 2434건의 질병 진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미국에서 다발 골수종의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된 이후 1995년 부터 2018년까지 다발 골수종 사망률이 23% 감소한 추세와 일치한다.
보고서는 재발 및 불응성 다발골수종 환자를 대상으로 anti-BCMA CAR-T 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높은 전체 반응률과 함께 완전 반응 상태가 최소 12개월 이상 유지되었다는 임상시험 결과,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중항체나 CAR-T 치료의 접근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이번 보고서 연구와 집필에 참여한 IQVIA의 EeMin Tan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보건의료 투자 확대, 정책 개혁을 통한 치료제 접근성 가속화, 보험 정책 명확화등과 같은 한국의 다발 골수종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최신 실사용 근거(RWE)를 바탕으로 한 다발 골수종 치료 지침이 마련되고, 의료기술평가(HTA) 과정에서 환자 및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새로운 치료제의 조기 도입이 가능해 진다면 환자들의 생존율과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와 보고서 작성은 개운치 않은 뒷맛도 남기고 있다. 세계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J&J(얀센)측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J&J는 현재 ‘테크베일리’, ‘카빅티’, ‘다잘렉스’, ‘발베르사’ 등 유명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약물은 모두 국내에서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대부분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품목이거나 급여 적용 품목도 적응증이 극히 제한적이다.
이 가운데 ‘다잘렉스’는 다발성 골수종의 표준 치료제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세계 매출이 매년 수십조 원대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반열에 올라 있다. 2023년 기준 ‘다잘렉스’의 전세계 매출은 전년(80억 달러) 대비 22% 증가한 97억 달러를 기록했다. 14일 현재 환율로 한화 13조 원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매출이다. 얀센 측은 ‘다잘렉스’가 향후 110억 달러(한화 약 15조 원)의 최고 매출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등 경쟁약물이 속속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거나 등장을 예고하면서 세계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시장을 둘러싼 긴장감은 여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와관련 아이큐비아측은 “이 프로젝트는 J&J Innovative Medicine의 지원을 받았지만, J&J Innovative Medicine은 백서의 내용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