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인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보건산업이 오히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보건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이산화탄소 2기가톤 이상)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10일 ‘기후 위기 대응과 연계한 바이오헬스산업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보건 산업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가 기후 변화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기후변화는 건강이 나빠진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찾도록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세계 여러 나라 의료기관은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펼치는 중이다.
이런 계획 가운데 하나가 데스플루레인(Desflurane) 쓰지 않기다. 데스플루레인은 수술 시 마취 유도를 위해 투입하는 전신마취제로, 이산화탄소와 같은 질량일 때 이산화탄소보다 2540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 효과를 낸다.
본지 취재 결과, 데스플루레인 240ml가 완전히 증발하면 이산화탄소 886kg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솔린 자동차가 4932Km를 달리면서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이다.
영국 뉴캐슬 어폰 타인에 있는 프리먼 병원(Freeman Hospital)은 2021년 12월 부터 데스플루레인 사용을 중지한 바 있다.
유럽 스코틀랜드는 지난해 데스플루레인 사용을 금지했다. 이 나라는 데스플루레인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첫 번째 나라다. 유럽연합(EU)은 2026년 1월 1일부터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 데스플루레인 사용을 금지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가보건의료서비스)는 산하 20개가 넘는 병원에 329만 유로(약 50억 원)를 지원해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면 3년 동안 100만 톤 이상 되는 탄소를 줄일 수 있고 차 52만 대를 도로에서 제거하는 기대효과가 예상된다.
영국의 비영리 조직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센터(CHS·Center For Sustainable Healthcare)’도 2008년부터 의료 부분에서 넷제로(Net Zero)와 탄소 감축을 이끌고 있다. 넷제로는 대기에 있는 온실가스 농도가 인간 활동에 의해 더 증가되지 않도록 순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CHS는 이를 위해 SusQI(Sustainability in Quality Improvement)와 NHS Forest라는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친환경 병동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 수술방식으로 수술법을 바꿔 탄소 배출량 줄이기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보건부인 HHS(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가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기후변화에 대응과 건강 형평성 정책 등을 추진 중이다.
HHS의 기후 행동 계획에는 ▲기후 변화 관련 공공 보건 및 바이오메디컬 연구 활동 확대 ▲기후 위기에 대한 보건부의 대응 개선 ▲보건부의 기후 회복력 보조금 정책 개발 ▲기후 회복력을 위한 작업 공간의 최적화 및 효과적 공간 관리 ▲보건부 시설의 지속가능한 기후 탄력적 운영 촉진 등이 있다.
우리나라 병원들도 ESG(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와 연계한 환경목표를 세우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경우 녹색경영목표를 세우고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리필 전산용품 사용 비율 30% 확대 ▲의료폐기물 10% 저감 ▲에너지 사용·온실가스 배출 10%저감 등을 실천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은 친환경 경영 추진 전략으로, ▲신재생 에너지 도입 ▲자연 친화적 병원 건립 ▲국내 녹색병원 네트워크 구축 ▲국제환경 관련 NGO 가입 ▲한국녹색병원학회 설립 등을 하고 있다.
별도 관련 의원회를 둔 기관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021년 우리나라 의료기관 최초로 ESG 위원회를 발족했다. 화순전남대병원은 ESG 경영위원회를 신설, 환경 및 사회적 책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도 ESG 위원회를 발족해 탄소 중립 실현, 의료 폐기물 감축 등의 과제를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