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 부분 같으면 신물질 아냐” … 대법, 바이오베터 특허 연장 ‘제동’
“활성 부분 같으면 신물질 아냐” … 대법, 바이오베터 특허 연장 ‘제동’
“존속기간 연장 가능 신물질 범위는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으로 한정”

“바이오젠 ‘플레그리디’ 활성부분 인터페론베타-1a … 기허가 제품과 같아”

케미컬 의약품에도 적용 가능 … 오리지널 시장 겨냥 국내 제약사에 유리해져
  • 이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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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8.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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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대법원 전경 [사진=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 갈무리]

[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존 제품과 약효를 내는 활성 부분이 같으면 바이오베터라도 특허 존속기간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바이오 의약품뿐 아니라 케미컬 의약품에도 적용 가능한 법리여서, 오리지널 제약사의 시장 방어는 어려워지고 후발 제약사의 시장 진입 문턱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바이오젠이 특허청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거절결정 불복 소송의 상고심에서 ‘플레그리디(성분명 : 페그인터페론베타-1a)’의 특허 존속기간 연장을 인정한 특허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심리를 다시 하라는 취지로 원심법원(특허법원)에 환송했다.

‘플레그리디’는 기허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아보넥스’ 등의 주성분인 인터페론베타-1a를 페길화(Pegylation, PEG의 접합)해 용해도, 생체 내 반감기, 안정성 등 물성 및 약동학을 개선한 제품이다. 바이오젠은 페길화한 단백질은 페길화하지 않은 단백질과 분자 관점에서 서로 상이한 새로운 물질이라며 특허 존속기간 연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허 존속기간 연장은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의 화학구조가 새로운 물질, 즉 ‘신물질’을 유효성분으로 해 제조한 의약품으로서 최초로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의 발명에 한해 허용된다(특허법 시행령 제7조).

여기에서 신물질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그 해석을 두고 이견이 적지 않았는데, 신약을 보유한 오리지널 회사들은 자사의 특허 기간을 늘리기 위해 전체 유효성분이 다르면 신물질이라는 주장을, 후발 제약사들은 시행령 문언대로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 자체가 달라야 신물질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동안 특허청과 특허심판원은 후발 제약사들의 주장대로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 자체가 달라야 신물질이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특허법원은 이와 반대로 활성 부분이 같더라도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유효성분이 달라져 약효, 약동학적 특성 등이 현저히 개선됐다면 이는 신물질에 해당한다고 봤다.

상급 법원인 특허법원이 오리지널 제약사에 유리한 판결을 하면서 앞으로 개량신약, 바이오베터 등을 이용해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를 방어하기가 더 유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이 처음으로 특허 존속기간 연장이 가능한 신물질의 범위를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으로 못 박으면서 오히려 후발 제약사들이 기존보다 더 빠르게 오리지널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의약품(플레그리디)의 유효성분 중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은 인터페론베타-1a”라며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부분이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인 인터페론베타-1a에 결합해 페그인터페론베타-1a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합물 전체인 페그인터페론베타-1a를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서 말하는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의약품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인 인터페론베타-1a 부분은 기허가 의약품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인 인터페론베타-1a와 입체적 화학구조가 동일하다”며 “이 사건 의약품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을 페그인터페론베타-1a로 파악해 이 사건 청구항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정하는 존속기간이 연장될 수 있는 발명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시했다.

최상급 법원인 대법원이 특허 존속기간 연장이 가능한 ‘신물질’을 명확히 정의한 만큼, 앞으로 하급 법원들도 이에 따라 판결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특히 이번 판례는 케미컬 의약품에도 적용할 수 있어서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제품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제약사들에 유리해졌다는 평가다.

앞서 특허 존속기간 연장에 성공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만성 손 습진 치료제 ‘알리톡(성분명 : 알리트레노인)’ 등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알리톡’의 주성분인 알리트레티노인은 지난 1995년 품목허가를 받은 ‘베사노사이드연질캡슐’의 주성분 트레티노인과 기하이성질체 관계다. 특히 회전이 자유로운 단일 결합을 포함하고 있어 RAR(레티노이드 수용체)에 결합하는 공통된 성질을 갖고 있다.

GSK가 ‘알리톡’의 특허 존속기간 연장을 시도했을 때, 특허청은 “알리트레티노인과 트레티노인의 약효를 나타내는 활성 부분의 화학구조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특허 존속기간 연장 가능한 ‘신물질’의 범위를 좁게 해석한 것인데, 특허심판원도 이러한 특허청의 판단과 같은 심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특허법원은 이들 두 성분에 관해 “입체 구조가 달라 화학구조가 다르고, 알리트레티노인은 레티노이드 수용체 중 RAR에만 결합하는 것과 달리 RAR뿐 아니라 RXR(레티노이드 X 수용체)에도 결합한다”며 ‘알리톡’의 주성분인 알리트레노인을 특허 존속기간 연장이 가능한 ‘신물질’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허청이 이러한 특허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GSK는 ‘알리톡’의 특허 존속기간을 1년 3개월 가량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톡’과 ‘플레그리디’는 각각 케미컬 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특허 존속기간 연장과 관련해 신물질의 범위가 쟁점이 됐던 대표적인 사례”라며 “‘플레그리디’와 관련한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고려할 때, ‘알리톡’의 특허 존속기간 연장 소송도 대법원까지 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에버그린 전략 제동 특허법 개정안 임기만료 폐기

존속기간 연장 가능 특허권 수 및 기한 제한 골자

KRPIA 등 반대 입장 고수 …재추진 가능성 미지수

한편,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존속기간 연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1개 의약품에 다수 특허를 등록하고 이들 특허의 존속기간을 모두 연장하는 방식으로 특허 독점기간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1개 품목에 특허권이 여러 개 있어도 단일 특허에 대해서만 특허권 연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등록된 모든 특허를 연장할 수 있어 개량신약이나 제네릭을 제조하는 회사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특허청도 존속기간 연장 가능 특허권 수 및 기한을 제한하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 발의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시도했으나, 해당 개정안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지난달 29일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내 제약업계와 정부, 국회가 공감대를 형성한 개정안이었던 만큼 재입법을 바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국회와 주무부처인 특허청 모두 법안 재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성과 없이 장기 표류하다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특허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정일영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아닌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치됐다. 입법을 맡은 소관 기관이 변경된 것으로, 정 의원을 통한 특허법 개정안 재발의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특허청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올해 1월 10일 퇴임한 후 5개월 넘게 공석이 이어지다 지난 6월 20에서야 김완기 신임 청장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현재 특허청에는 장기간 수장 공백으로 밀린 현안이 많은 만큼, 정일영 의원이 발의했던 특허법 개정안의 재추진 관련 논의가 언제쯤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국제의약품특허협회, 일본제약공업협회, 일본지적재산협회 등 해외·다국적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어 실제 재추진이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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