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에버그린’ 전략 제동 특허법 개정 이대로 좌초하나
오리지널 ‘에버그린’ 전략 제동 특허법 개정 이대로 좌초하나
정일영 의원 발의 특허법 개정안 임기만료 폐기

존속기간 연장 가능 특허권 수 및 기한 제한 골자

기재위로 자리 옮긴 정 의원 재발의 어려울 듯

법안 주도 특허청도 수장 공석 장기화에 무대책

KRPIA 등 반대 입장 고수 … 재추진해도 난항 예상
  • 이순호
  • admin@hkn24.com
  • 승인 2024.06.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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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코리아뉴스 D/B]
[사진=헬스코리아뉴스 D/B]

[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1개 의약품에 다수 특허를 등록하고 이들 특허의 존속기간을 모두 연장하는 방식으로 특허 독점기간을 늘리는 다국적 제약사의 ‘에버그린 전략(evergreen strategy, 특허 독점기간 연장 전략)’에 제동을 걸기 위해 마련한 특허법 개정안이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관련 법안을 주도한 특허청이 장기간 이어진 수장의 공석으로 후속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개정안을 발의했던 국회의원까지 다른 상임위원회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년간 준비한 개정 작업은 장기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 발의한 특허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지난달 29일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해당 개정안은 존속기간 연장이 가능한 의약품 특허권의 수를 제한하고 존속기간 연장 시 상한 기간을 두는 것이 골자다. 국내 제약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마련한 개정안이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가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됐다.

국내 제약업계는 지난 2019년 염 변경 의약품의 특허권 연장 침해를 인정한 ‘솔리페나신’ 대법원 판결 이후 연장된 존속기간 회피가 불가능해지자 1개 품목당 1개 특허에 대해서만 존속기간 연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개 품목당 다수의 존속기간 연장 특허를 보유한 오리지널사의 ‘에버그린’ 전략이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미국이나 유럽은 1개 품목에 특허권이 여러 개 있어도 단일 특허에 대해서만 특허권 연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등록된 모든 특허를 연장할 수 있어 개량신약이나 제네릭을 제조하는 회사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제품은 물질특허, 조성물 특허 등 다수 특허를 등록할 수 있으며, 이들 특허는 모두 5년 범위에서 존속기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물질특허가 끝나기 전에 조성물 특허 등으로 에버그리닝 전략을 펼치는 오리지널사가 각 특허의 존속기간까지 연장하면 권리 보호 기간은 사실상 더 길어지게 된다.

국내 제약사들 입장에서 보면, 후속 특허의 만료일 연장으로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의 시장 진입 시기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값싼 제네릭을 복용할 수 없고 건보재정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국내 제약사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특허청은 국내 제약사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다국적 제약사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등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간담회를 진행하며 의견 취합에 나섰고, 이를 바탕으로 2019년 특허법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약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미국처럼 특허권 존속기간을 품목허가일로부터 14년으로 상한을 두는 동시에 1개 허가 품목에 1개 특허권 연장만 인정하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안을 2023년 3월 확정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21대 국회에서 특허청 소관 법률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이던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21대 국회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특허청은 조속한 법안 처리를 위해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2023년 7월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심사와 1차 전체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됐을 뿐, 이후 진전 없이 계류되다 지난달 말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국내 제약업계와 정부, 국회가 공감대를 형성한 개정안이었던 만큼 재입법을 바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국회와 주무부처인 특허청 모두 법안 재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성과 없이 장기 표류하다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특허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정일영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아닌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치됐다. 입법을 맡은 소관 기관이 변경된 것으로, 정 의원을 통한 특허법 개정안 재발의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해당 개정 작업을 주도한 특허청 입장에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의 다른 국회의원과 힘을 합쳐야 하는데, 현재 의사 결정권자가 없어서 이 또한 어렵다. 특허청은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1월 10일 퇴임한 후 5개월간 수장 공석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특허청장이 5개월 이상 공석인 것은 1977년 개청 이래 처음인데도, 대통령실은 어떤 이유나 설명도 없이 특허청장 인선을 미루고 있다. 김시형 차장이 특허청장 직무대리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신규 정책 발굴과 특허청 내부 인사 등 기본적인 업무는 물론 국내외 행사 준비를 비롯한 주요 현안 처리까지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정일영 의원이 발의했다가 폐기된 특허법 개정안과 관련한 후속 대책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특허청 관계자는 10일 헬스코리아뉴스와 통화에서 “(새로운) 청장님이 오시면 청장님 의견을 들은 다음에 향후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며 “일단 결정권자(특허청장)가 오셔야 할 것 같다. 오시면 그동안 진행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일영 의원이 기재위로 자리를 옮기면서 의원 발의가 어려워진 것과 관련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국회의원)은 관심이 있겠지만, 어려운 기술 분야이고 해서 (국회와 협업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신임 특허청장 인선이 이뤄지더라도 개정안 재추진은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국제의약품특허협회, 일본제약공업협회, 일본지적재산협회 등 해외·다국적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7월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서 법안을 검토한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은 특허권자의 권리를 제한해 국내 신약개발 지연과 신약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 제한 등으로 국민 보건 건강 및 국내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서 개정 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법안을 재추진할 경우)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이나 단체의 의견도 다시 들어보고 그대로 갈지 수정할지 결정해야 할 것 같다”며 “이 또한 청장님이 오셔야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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