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의료대란 여파 대학병원 문전약국 ‘매출 뚝뚝’
[현장] 의료대란 여파 대학병원 문전약국 ‘매출 뚝뚝’
처방건수 감소로 심각한 경영난 호소

“이대로 가면 문 닫는 약국 속출할 것”
  • 유지인
  • admin@hkn24.com
  • 승인 2024.04.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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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앞에 자리잡은 한 문전약국 앞에서 안내 도우미가 환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24.04.12]
서울아산병원 앞에 자리잡은 한 문전약국 앞에서 안내 도우미가 환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24.04.12]

[헬스코리아뉴스 / 유지인]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으로 ‘빅5’ 대학병원들마저 환자 수 감소에 따른 비상경영을 선언한 가운데, 그 불똥이 인근의 문전약국으로 튀고 있다.

문전약국은 일반 동네약국과 달리, 주 타깃이 인근 대학병원의 외래 환자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외래환자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이곳 약국을 찾는다. 해당 대학병원의 처방목록에 있는 의약품을 거의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서다.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소재 서울아산병원 앞에는 대규모 문전약국 거리가 형성돼 있다. 병원 정문 앞 왕복 8차 강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빼곡하게 들어선 약국 수는 무려 30여 곳. 약국 거리의 길이만 300여 미터, 대로변에 위치한 약국만 20여 곳이다.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약국간 환자 유치 경쟁은 아산병원의 진료 시간에 맞추어 비교적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병원에서 약국으로 환자를 실어 나르는 무료 승합차량 운행은 기본이고, 약국마다 인도와 도로변에 별도의 안내 도우미를 배치, 환자들의 약국 출입과 주차를 돕는다. 말이 도우미지, 사실은 ‘호객행위’에 가깝다.

 

서울아산병원 앞에 길게 늘어선 문전약국 모습. [2024.04.12]
서울아산병원 앞에 길게 늘어선 문전약국 모습. [2024.04.12]

호객 대상은 병원에서 처방 내역을 약국에 전송하지 않고 찾아오는 ‘약국 비지정’ 환자들이다.

이 때문에 한때 약국 주변의 주민들은 문전약국들의 호객행위가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환자의 약국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대법원은 지난 2022년 5월, 약국 안내 도우미를 공동으로 고용했다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약국 관계자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내, 유죄를 선고토록 했다.

그럼에도 문전약국들이 별도의 주차시설까지 갖추고 도우미를 통한 환자 호객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니다. 문전약국의 특성상, 처방전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문전약국 약사는 최근 헬스코리아뉴스에 “문전약국은 모두 대학병원 처방전을 보고 들어온 약국들”이라며, “대학병원 인근 약국들은 동네약국과 달리, 항암제 등 고가 처방약을 조제하는 경우가 많아 환자 유치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약국거리 환자 발길 급감 

하지만 지난 12일 낮, 기자가 찾은 서울아산병원의 ‘약국거리’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평소와 달리 거리는 한산했고 멍하니 서 있는 도우미들의 표정에서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약국 내부 전경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이 닫히기 바쁘게 또 다른 환자들이 꼬리를 물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고요한 적막감이 어쩌다 들어오는 손님을 반기는 듯 했다.

처방약 조제와 복약상담 등으로 분주하던 약사들의 손길도 멈춘 지 오래다. 환자들의 약국 이용시간은 채 5분을 넘지 않았다. 그만큼 찾는 환자들이 줄어들었다는 방증이다. 고혈압과 당뇨로 6개월마다 이곳 약국을 찾는다는 한 50대 여성은 “원래 10분 이상 기다렸는데, 오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조제가) 끝났다”며,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한 여성이 한 손에 처방전을 들고 인근의 문전약국을 들어서고 있다. 약국 내부의 환자 대기석은 텅 비어 있다. [2024.04.12]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한 여성이 한 손에 처방전을 들고 인근의 문전약국을 들어서고 있다. 약국 내부의 환자 대기석은 텅 비어 있다. [2024.04.12]

갑작스런 의대 증원, 문전약국에 직격탄

약국가에 따르면 대학병원 앞의 대형 문전약국들은 대부분 기업형 법인약국이다. 근무인력도 동네약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약사, 관리자, 도우미, 기사 등 약국마다 수십여 명에 달한다. 웬만한 매출로는 버티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대학병원 앞의 건물 임대료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천정부지다.

정부의 급작스런 의대증원 정책으로 경영에 직격탄을 맞은 약국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아산병원 인근의 A약국 관계자는 “3월부터 처방건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아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약국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의 B약국 관계자는 “처방건수가 얼마나 줄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래 하루에 450건은 했는데, 요즘은 370~380건으로 줄었다”며 “우리가 이 정도면 다른 약국들은 (사정이) 더 안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C약국 관계자도 “임대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 고정적으로 나갈 곳은 많은데, (의료대란) 상황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답답하다”며 “병원이 인력을 감축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의 입원환자와 수술 건수는 의료대란 이전 대비 각각 절반 수준으로, 외래 환자는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최근 40여일간 발생한 순손실(적자)만 500억 원을 넘어서는 등 연말까지의 순손실액이 4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병원측은 의사를 제외한 일반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를 넘어 희망퇴직까지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전공의 560명 대부분과 전임의 330명 중 절반 이상이 병원을 떠난 상태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헬스코리아뉴스에 “처방건수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정확히 집계하긴 어렵지만, 외래환자가 줄었기 때문에 (당연히) 문전약국의 조제건수도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다른 대학병원 주변의 문전약국들도 다르지 않다. 약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전약국의 처방건수는 의료대란 이전에 비해 적게는 20%, 많게는 30% 이상 줄어든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병원 앞에 있는 한 문전약국의 약사는 “대학병원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며 “정부가 하루빨리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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