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이 판매를 포기하는 탓에 빈번하게 공급중단 사태가 발생하는 국가필수의약품. 의료 현장에서는 꼭 필요한 약물이지만,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의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제약회사들이 약물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반드시 채산성 때문만은 아니다. 최대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 소송을 과도하게 남발하는 등 약값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시민사회단체가 내일(27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약제비 환수환급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제약회사들이 행정소송을 통해 정부의 약가인하 조치를 무력화시킴으로써, 건보재정 악화와 환자의 약제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건강세상네트워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3개 단체는 26일 공동 성명을 통해 일부 제약회사의 약제비 무력화 소송을 강하게 비판했다.
관련단체 및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계 다국적제약사인 게르베코리아의 조영제 ‘리피오돌울트라액(Lipiodol Ultra Solution, 성분: 아이오다이즈드오일·Ethyl Esters Of The Iodised Fatty Acids Of Poppyseed Oil, 양귀비종자 유래 요오드화지방산 에틸에스테르)은 1998년 국내 허가를 받은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약값을 인상해 왔다. 2016년, 기존보다 높은 5만 2560원의 보험약가를 인정받은데 이어, 2018년에는 원가 대비 마진율 저하 등을 이유로 보건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기존 대비 261.5% 인상된 19만 원의 보험약가를 받아냈다.
다만, 정부의 약가인하 기전에 따라 이 약물의 보험약가는 올해 1월 18만 8000원에서 13만 3000원으로 약 30% 인하된데 이어 다음달 1일 다시 10만 1745원으로 23.5% 인하된다.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이 약물은 지난 2020년 7월 동국제약의 자회사인 동국생명과학의 제네릭 약물인 패티오돌주(Fattiodol Injection)가 등재되었음에도 3년간 가격 인하를 피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행정소송이었다.
게르베코리아는 리피오돌의 약가인하가 결정되자, 이에 불복해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였고 그 결과 3년간 약가인하를 미룰 수 있었다. 최종심은 졌지만 이 회사는 30% 약가인하를 3년 동안 미루는 매출액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게르베측이 약값을 가지고 이처럼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약물이 특정 질환에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조영제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2020년 동국제약이 패티오돌주를 개발해 내놓기까지 이 조영제는 림프조영, 침샘조영, 간암의 경동맥화학색전술(TACE, transarterial chemoembolization) 시행, 난임 진단 검사 중인 여성에서의 자궁난관조영에 없어서는 안되는 ‘세상에 하나뿐인 희귀의약품’이었던 것이다.
약제비 환수·환급법안, 2021년 복지위 통과후 지금까지 법사위 계류 중
국회와 시민사회는 제약사와 대형로펌들이 행정소송을 통해 약가인하 및 급여범위와 관련한 처분을 수년간 미루는 꼼수를 부리자, 급기야 약제비 환수·환급법안을 마련했다. 제약회사들이 행정소송을 벌여 약가인하를 막아도 소송이 종결된 이후에는 복지부가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손실을 회사측에서 보상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 2021년 11월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고도 1년 5개월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된 채,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제약회사와 대형로펌은 지금도 권리구제를 받겠다는 명목으로 재판청구권을 악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그로인해 환자는 비싼 가격에 약을 구매해야 하고, 건강보험재정은 매년 누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외국에서 효과가 불분명하여 건강보험으로 급여하지 않는 약제들을 보건복지부가 재평가하여 급여축소를 결정하자 제약회사는 무더기 소송을 벌여 수년간 급여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게 이들 단체의 설명이다.
이들 단체는 그로인해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이 입은 피해가 누적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약 관계자는 26일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관련법이 오래전에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는데도 지금까지도 처리되지 않고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며 “지금도 너무 늦었다. 부당하게 털리는 환자의 약값과 건강보험재정의 주머니를 생각한다면, 내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약제비 환수환급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제약사들의 소송남발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동국제약 “약가 인하되어도 조영제 공급 계속” ... 게르베의 선택은?
한편, 동국제약은 자사의 패티오돌주에 대한 보험약값이 오리지널인 리피오돌의 약가인하 시점에 맞춰 10만 1745원으로 인하되지만,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오랜 기간 시장을 주도해왔던 게르베코리아측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철수하지 않는 이상, 낮은 약가를 이유로 더 이상 공급중단 선포와 같은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동국제약 관계자는 이날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약값이 인하되면 손실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물의 공급을 손쉽게 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으로서는 공급을 중단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약품 시장도 경쟁약물이 등장하면 약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록 제네릭일지라도 국내 기업이 약물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동국제약이 제네릭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지금처럼 (다국적 제약사를 상대로) 약값을 인하할 수 있었겠느냐”며 제약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고로 지난해 기준, 게르베 리피오돌과 동국제약 패티오돌의 매출은 각각 28억 원과 36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매출격차가 무려 77배에 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