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성분명 처방을 반대할까 ... 병원의사협의회의 뼈 때리는 일침
의사들은 왜 성분명 처방을 반대할까 ... 병원의사협의회의 뼈 때리는 일침
  • 임도이
  • admin@hkn24.com
  • 승인 2022.11.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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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오유경 식약처장이 지난달 20일 국회 종합감사에서 성분명 처방 정책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식약처장이 국정감사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성분명 처방을 언급한 것을 두고 항의 공문을 발송했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오유경 식약처장이 약사회장이냐”며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소청과의사회는 오 처장이 약사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해 “국민 건강을 대변하는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 아니라, 오직 약사 이익을 대변하는 게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선택분업을 실시하고 복약지도료와 약품관리료만 줘도 의사는 원내조제를 할 것”이라며 “자동조제기도 있으니 인건비도 필요 없고 의사가 약사보다 자세히 복약지도를 해서 건보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서울시의사회 등 많은 의료계 단체들이 식약처장의 발언을 규탄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7일 열린 식약처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2.10.07]
7일 열린 식약처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2.10.07]

사실 의약품의 성분명 처방에 대한 논란은 1~2년 이어져 온 게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약정 합의안에 의해 대체조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대한약사회 등 약사 사회는 끊임없이 성분명 처방 제도 도입을 요구해 왔고 이런 요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성분명 처방 제도 추진을 위한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다. 여기에 일부 보건의료 학자나 시민단체까지 가세, 성분명 처방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성분명 처방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의사들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왜 하나같이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이를 밥그릇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의사 사회의 반발이 너무 크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은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지적에서 읽을 수 있다. 협의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성분명 처방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본지는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의 목소리가 다수의 힘의 논리에 의해 억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그들의 입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논리는 나름 설득력이 있고 호소력도 살아 있다.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 왜 문제일까? 

협의회에 따르면 현대의학에서 사용되는 모든 약들은 고유한 명칭이 있다. 그 명칭에는 학술적으로 그 약의 성분을 알 수 있도록 명명한 ‘성분명’이 있고, 각 약제를 만들어내는 제약회사가 약물의 판촉을 위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상품명’이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약으로 널리 알려진 ‘amlodipine besylate’는 이 약제의 성분명이고, 이 약제를 최초로 개발해서 출시한 화이자 제약은 이 약제에 ‘노바스크(Norvasc)’라는 상품명을 붙여서 판매했다.

노바스크의 특허 및 독점권이 풀리자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흔히 카피약이라고 불리는 ‘제네릭(Generic)’ 약제를 출시하였고, 이에 국내 제약회사들도 앞다투어 수많은 제네릭 약제들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았다. 현재 국내에는 ‘amlodipine besylate’라는 성분명을 가진 약제가 수 십 종류가 있으며, 오리지널 약인 노바스크뿐만이 아니라 제네릭 약제들도 널리 처방되고 있다.

현재는 환자가 고혈압약으로 ‘amlodipine besylate’를 처방받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찰을 받고 의사로부터 ‘노바스크’와 같은 상품명으로 처방을 받게 된다. 이후 환자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가게 되면, 약사로부터 적절한 복약지도를 받은 후 처방전에 명시된 상품명 그대로의 약제를 처방에 맞게 조제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약국 입장에서는 의사가 처방한 상품명의 약제를 재고 관리 또는 제약 유통 과정 등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환자가 약을 문제없이 처방받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대체조제 제도이다.

대체조제 제도 하에서는 사전에 의사가 승인한 동일 성분의 대체조제 가능 약품 목록이 있다면, 이 목록 중에 약사가 선택해서 환자에게 대체조제를 한 후에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사전 승인 약제가 없다면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을 통과하여 오리지널 약제와 거의 동등한 효과를 보인다고 검증된 약제들 중에 한 가지로 대체조제를 한 후에 대체조제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고, 의사에게도 사후 통보해야한다.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대체조제가 이루어지면 해당 약사는 처벌받게 되고, 만약 의사의 사전동의 없이 대체조제를 했다가 그로 인해 약화사고가 발생하면 약사가 책임을 져야한다. 대체조제는 그만큼 약사들에게 위험 부담이 따르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약사들은 대체조제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뿐만아니라, 동일 성분명의 약제라고 하더라도 모든 제네릭 약제가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제 선택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았다.

병원의사협의회는 “약국 운영을 하다 보면 너무 다양한 약제에 대한 재고 관리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백마진의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동일 성분 약제의 종류를 상대적으로 적게 유지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이에 약사회에서는 이러한 복잡한 대체조제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지속적으로 원해왔다”고 주장했다.

 

약국약국 처방조제 처방조제

하지만, 성분명 처방 제도가 도입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사들은 고혈압 환자 처방전에 ‘노바스크’라고 처방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amlodipine besylate’라고 처방을 입력하게 되고, 약사들은 처방전에 적힌 ‘amlodipine besylate’라는 성분의 혈압약 중 약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약제 중에 한 가지를 약사 자신이 고르거나 또는 환자가 고르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약사들 입장에서는 기존 대체조제 제도가 가지고 있던 불편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도 자체 판단에 따라 대체조제를 할 수 있게 되고, 약제 선택의 권한은 의사로부터 넘겨받으면서도 약화사고에 의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협의회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약사회가 성분명 처방 제도 시행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심정이 이해가 된다”면서도 “지금까지 제도가 시행되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제도 시행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들이 해결되기 전에 제도가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 아닌, 외부 요인 개입 자체가 환자 건강에 악영향”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료계는 “의약분업 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 약사들이 하던 조제 행태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두 가지를 근절시켜야 의약분업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중 한 가지는 환자에게 문진을 하고 약을 조제해서 주는 불법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임의조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무분별한 대체조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임의조제는 의약분업 시행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쉽게 근절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라졌고, 대체조제는 제한된 조건하에서 허용되어 시행되고 있다. 당시 의료계가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막으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은 치료 행위에 해당되고, 치료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의사가 지기 때문에, 의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치료 과정에 개입되는 것 자체가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성분명을 가지는 약제는 성분에 따라서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제를 다 포함하여 적게는 수 가지에서 많게는 수 십 가지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의료계는 이렇게 다양한 약제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서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상담 의사진료상담

의료계에 따르면 보통 의사들이 한 가지 성분명을 가지는 여러 가지 약제 중에서 하나의 약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수련 기간 동안의 학습, △실제 직접 환자에게 처방 했을 때 환자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개인의 경험,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들만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진다.

환자에 따라서는 오리지널 약제보다 제네릭 약제에 더 좋은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질병에 같은 약을 처방해도 반응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의사들은 이러한 환자마다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과서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약제를 조절하게 된다.

만약 한 가지 성분명당 약이 한 가지 밖에 없거나, 한 성분명에 해당하는 모든 약제들의 제조과정과 효과가 과학적으로 동일하다면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의사들이 성분명 처방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예컨대 의사들이 대체조제 가능 약제의 기준으로 삼은 생동성 시험만 하더라도, 시험에 통과한 약제로 오리지널 약과 비교하여 제네릭 약이 100% 같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생동성 시험을 하는 과정은 19~50세의 성인에게 오리지널약과 제네릭약을 일정 간격으로 번갈아 투여한 후 혈액 검사를 하여, 약의 혈중농도가 최고일 때의 값(Cmax)과 총 혈중 약물농도, 즉 AUC(area under the concentration-time curve)를 비교해, 제네릭 약물의 Cmax와 AUC가 오리지널 약물의 80~125% 범위에 들면 시험을 통과시킨다.

이때 제네릭 약물농도의 범위가 오리지널 약물과 100% 같은 것이 아닌 80~125%의 허용 범위를 두는 이유는 바로 이 범위가 90% 신뢰구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동성 시험 통과 약물도 엄밀히 말하면 오리지널 약과 같은 약이 아니라 90% 이상의 유사한 약이 되는 셈이다. 

협의회는 “허용 범위를 보면 알겠지만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제네릭 약물 사이에는 최대 45% 정도의 약물 농도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제네릭 약물끼리만 비교하면 생동성 시험 통과 약물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그런데 대한민국에 시판되는 동일 성분명의 제네릭 약제 중에는 생동성 시험처럼 임상 시험을 한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실험적으로 농도를 측정하는 비교용출 실험만을 통해서 의약품 동등성을 획득한 경우가 더 많다”며 “비교용출 실험만 통과한 약제들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하여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같은 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의사들은 국내 생동성 시험이나 비교용출 실험 결과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2006년 발생한 생동성 시험 자료 조작 사건은 제네릭 약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대부분의 의약품 동등성 시험 위탁 기관들은 제약회사의 비용 지불에 대해서 결과를 내주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더 떨어진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다. 실제로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의사는 생동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약이 환자에게 처방되어도 손쓸 방법이 없게 된다. 심지어 의사가 믿고 처방하던 제네릭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분명 처방 제도하에서는 처방에 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다른 제네릭 약이 약사에 의해 동일성분으로 대체조제가 되더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행한 의료 행위의 결과가 외부 요인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경계한다. 따라서 내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보이는 약제가 환자에게 투여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는 제대로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 제도는 결코 받아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성분명 처방하에서 약화사고 누구의 책임? 

현행 제도하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행한 치료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 과정에서 명백한 과실이 있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는 처벌을 받게 된다. 약물 투여에 의해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약화사고도 그 중 하나이다.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약사가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처방전과 성분이 완전히 다른 약을 조제한 경우나 의사의 사전 승인 없이 대체조제를 한때에는 약사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이 외의 경우는 대부분 의사가 책임을 지고 있다.

의사에게 환자의 치료와 관련하여 법적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가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의학의 한계로 보아 처벌할 수 없지만, 과실이나 주의의무 태만 등으로 인해 환자의 생명에 위해가 가해지는 것은 의사가 막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의사의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것이다.

약화사고의 경우도 교과서적으로 올바르게 약을 처방하고, 약의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했다면 약을 먹고 이상이 생겨도 의사가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 소송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의사가 처방한 약이 정확한 종류, 정확한 용량, 정확한 용법대로 환자에게 투여되었는지 여부도 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약사가 사전 승인되지 않은 약물로 대체조제를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약화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자료=헬코DB] 처방약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전문약 일반약 의약품 진통제 해열제 소화제 제약산업

성분명 처방 제도는 이런 부분에서도 논란거리다. 약화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의 문제로 첨예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는 오리지널 약을 환자에게 처방해 줄 생각으로 성분명 처방을 하였는데, 약국에서 생동성 시험도 통과하지 못하고 비교용출 실험으로 의약품 동등성을 획득한 약을 조제해 준 이후에 약화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이것을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지가 애매해지게 되는 것이다.

의료계는 “분명 성분명 처방 제도가 법적으로 통과되어 시행되면, 약사는 자유로운 대체조제 행태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의사도 약 선택 과정이나 약물 부작용 설명과 관련해서 과실이 없었다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겠지만, 약화사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국민들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성분명 처방 제도가 법적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제도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입장이다.

 

성분명 처방 제도, 과연 경제적 잇점은 있을까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의 경우, 많은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불법적으로 받는 리베이트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동일 성분 약제를 많이 두지 않아도 되어서 발생하는 재고 관리의 효율성,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짐으로 인해 의약품 매입 시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는 백마진의 규모 증대 등 경제적 이득이 명백하게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성분명 처방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의료계는 정부가 성분명 처방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19년 통계를 보면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요양급여비용 85조 8000억 원 중에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조 8000억으로 24.1%에 달했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가격이 비싼 오리지널 약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 약의 처방 비중을 늘려서 약제비 지출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도 제네릭 약품 처방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나 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상당수 의사들의 오리지널 약 처방 선호 현상과 환자들 사이의 오리지널 약 처방 선호 현상, 그리고 제네릭 약에 대한 신뢰성 논란 등이 지속되면서 제네릭 약 처방 비중은 이전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고 있다.

 

약국 처방약 조제약 일반의약품(OTC) 전문의약품(ETC) [사진=헬스코리아뉴스] (2022.04.15)

그렇다면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어 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제네릭 약 조제량을 늘릴 경우, 건보재정 절감 효과가 있을까. 의료계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오리지널 약 대비 제네릭 약가가 높은 편에 속하고, 이로 인해 제네릭 약물 처방에 의한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은 국가라는 점이다.

지난해 2월 미국의 싱크탱크 기관 중 하나인 RAND 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처방의약품 가격 비교’에 따르면 미국과 대비해 한국의 오리지널 의약품은 5배나 가격이 낮은 대신, 제네릭은 분류 기준에 따라 2~3배 정도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처방약 시장규모는 136억 달러(2018년 환율 기준 15조 1000억 원)로 8위였는데, 오리지널 대비 제네릭 약가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57.20으로 미국 대비 약 2배 비싸고 OECD 평균보다 약 30% 높았다. 결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제네릭 약 처방 또는 조제를 통해서 재정 절감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네릭 약가를 더 인하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제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의사들의 처방 패턴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자신이 처방한 약이 정확하게 환자에게 투여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오리지널과 제네릭을 포함하여 어떤 약이 환자에게 투여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게 되고, 이는 결국 1개 성분명당 하나의 약밖에 없는 특허 및 독점권이 풀리지 않은 오리지널 약 처방 선호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지금보다 더 비싼약으로의 처방을 의미한다. 

지금도 각 질병에 대한 신약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신약들은 국내에서 약 5년 정도의 특허 및 독점 판매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신약들은 기존 다른 성분의 약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약가를 유지한다. 따라서 의사들이 특허 및 독점권이 풀리지 않은 오리지널 약을 집중적으로 처방하게 되면, 정부의 약제비 절감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의료계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성분명 처방 제도는 약사 직능에는 커다란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지만 정부나 국민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정책이 되는 셈이다.

 

“대체조제와 임의조제 근절은 의약정 합의사항”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 의료계는 크게 반발했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일부 의료 공백까지 발생할 정도로 의료계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의약분업 투쟁으로 인해 많은 의료계 인사들은 법적 처벌을 받았고, 의약분업 제도 시행 이후 동네의원과 동네약국의 몰락, 건보재정 파탄, 필수의료 분야의 몰락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당시 의료계는 의약분업 제도의 부작용을 예상하고 이를 적극 알렸지만, 정부의 강한 제도 추진 의지는 꺾지 못했다. 의료계는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자, 의약정 합의안을 받아들이고 파업 투쟁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때 맺은 의약정 합의안이 파기되는 상황이 오면, 의약분업을 수용했던 당시 의료계의 결정도 파기되는 것이기에 이 합의안은 의약정 모두가 비교적 잘 지켜왔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당시 의료계가 가장 중요하게 근절을 요구하여 의약정 합의안에 담았던 두 가지 조제 행태가 부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 가지는 동일 성분명 내에서는 어떤 약도 조제할 수 있지만 의사의 사전 승인을 받을 필요도, 사후 통보도 할 필요도 없어짐으로 인해 무분별한 대체조제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동일 성분 내에서 이기는 하지만 약에 대해서 정보가 거의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사가 약을 정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임의조제가 부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체조제와 임의조제 근절은 의료계에서 의약정 합의안을 만들 때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내용으로, 성분명 처방 제도 시행으로 인해 이 두 가지가 사실상 허용된다면, 이는 결국 2000년 의약분업 당시 맺었던 의약정 합의를 정부와 약사회가 파기하는 꼴이 된다.

이와관련 병원의사협의회는 “의약정 합의가 파기된다면 의료계는 더 이상 현재의 의약분업 제도를 따를 이유가 없어진다”며 “성분명 처방 저지 투쟁과는 별도로 의료기관 별로 원내조제를 하면서 국민들이 조제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선택분업을 추진하는 투쟁도 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정부와 약사회의 일방적인 합의안 파기로 인해 촉발되는 의료계의 투쟁은 충분한 명분이 있기에,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을 넘어서는 더욱 강경한 투쟁을 이끌어 낼 것으로 생각된다”며 “정부와 약사회가 아무런 실익도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잘못된 판단을 통해서 의료 대란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의료계 투쟁을 유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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