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전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과 중독을 막을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마약성 진통제가 항암제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령화 인구 증가로 신경계 질환과 같은 만성 통증 환자가 늘면서 진통제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고 있다. 특히, 아편 유사체 계열 약제는 통증 완화 효과가 탁월해 수술 후 통증이나 관절염으로 인한 만성통증의 관리에 주로 쓰인다. 다만, 세계적으로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환자 사례가 속출하자 마약성 진통제처럼 뛰어난 진통효과를 보이면서 중독성은 없는 비마약성 진통 신약으로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진통제 시장 규모는 약 714억 달러(한화 약 96조 원)로 평가된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글로벌 데이터(Global Data)에 따르면, 이 가운데 비마약성 진통제 시장은 2021년 139억 1920만 달러(한화 약 18조 7700억 4120만 원)로 집계됐다. 이 시장은 연평균 14.5%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오는 2030년에는 471억 8430만 달러(한화 약 63조 6374억 6541만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크게 소염진통제(NSAID,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와 해열진통제로 나뉜다. 해열진통제는 통증 완화·해열 효과가 있고, 소염진통제는 이 두 가지 효과와 더불어 염증을 감소시키는 작용까지 한다. 대표적인 해열진통제는 미국 J&J(존슨앤존슨, 얀센)의 ‘타이레놀’(Tylenol, 성분명: 파라세타몰·paracetamol), 소염진통제는 독일 바이엘(Bayer)의 ‘아스피린’(Aspirin, 성분명: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이 있다.
하지만, 이들 약물은 부작용 때문에 복용시 주의를 요구한다. 해열진통제의 주요 성분은 주로 간에서 분해되므로, 과다 복용하면 심각한 간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소염진통제도 위장관 질환과 내출혈 위험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가진다. 이로 인해 뛰어난 진통효과를 보이면서 부작용은 없는 비마약성 진통제가 주목받고 있다.
기대감 컸던 새로운 기전의 비마약성 진통제 ... 임상서 줄줄이 실패
최근 가장 이목을 집중 시킨 신약은 미국 앰피오 파마슈티컬스(Ampio Pharmaceuticals)가 개발해 온 TLR 7 작용제 ‘앰피온’(Ampion, 성분명: 킬로달톤·kilodalton)이다.
‘앰피온’은 염증 유발 사이토카인 단백질(TNFα, IL-1β, IL-12) 생성을 감소시켜 통증 완화, 질병 진행 중단, 무릎 기능을 개선시키는 최초의 관절 내 주사제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40세에서 85세 미만의 중증 무릎 골관절염 환자 10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시험(시험명: AP-013)에서 ‘앰피온’은 12주차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통증 감소와 기능 개선 효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연구 데이터가 누락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4월 ‘앰피온’의 신약허가를 불허한 바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당시 마이크 마티노(Mike Martino) 앰피오 최고경영자는 “새로운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회사측은 지난 3일(현지 시간), ‘앰피온’에 대한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회사 측은 이날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앰피온’에 대한 개발을 중단한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이밖에 엘림 테라퓨틱스(Eliem Therapeutics)도 지난 2일(현지 시간), 자사의 팔미토일에탄올아미드 전구약물 ‘ETX-810’이 요추 신경근 통증에 대한 임상 2a상 시험에서 실패하자 개발 중단 소식을 발표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새로운 비마약성 진통제를 개발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박수를 받을 만 하지만, 중추신경계를 겨냥하는 약물 개발은 가장 위험한 도박 중 하나”라며 “수많은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지만,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 비보존제약 ‘오피란제린’, 미국 및 한국서 임상 순항 중
하지만 언제나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성과를 보이면서 임상이 순항 중인 곳도 있다.
개발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다름아닌 국내 기업 비보존헬스케어다. 최근 비보존제약을 흡수합병해 제약사업에 뛰어든 이 회사는 현재 주사제 형태인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VVZ-149)’에 대한 임상 3상 시험을 미국과 한국에서 진행 중이다. 미국 임상은 엄지건막류(무지외반증) 환자, 한국 임상은 대장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환자는 총 300명이다.
‘오피란제린’은 수술 후 통증을 비롯한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서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가진 비마약성 진통제로,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에 동시 이중 길항 작용을 통해 통증 전달을 차단한다.
회사 측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타이레놀처럼 가벼운 통증만 가라앉힐 수 있는 기존 비마약성 진통제와 달리 중등도 이상의 진통에도 효과를 보인다”며 “기전이 달라 마약성 진통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RNA 치료제 플랫폼 기업 올리패스도 지난 9일 자사의 비마약성 진통제(신약) OLP-1002에 대한 호주 임상2a상 시험 2단계 ‘위약대조 이중맹검’ 평가 임상 시험 계획서가 호주 인체연구윤리위원회(HREC)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9일 공시한 바 있다.
회사측은 “임상2a상 시험 1단계 ‘오픈 라벨’ 평가에서 말초 신경 제어에 특화된 임상 용량인 1 마이크로그램 OLP-1002 투약 시 ‘일차 요법 치료제’ 특성에 부합하는 강한 진통 효능과 긴 약효 지속력이 관측되었기 때문에, 2단계 평가에서는 관절염 환자들에 1 마이크로그램 OLP-1002, 2 마이크로그램 OLP-1002, 혹은 위약을 1 회 투약한 후 6 주에 걸쳐 환자 별 진통 효능을 ‘위약대조 이중맹검’ 방식으로 추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스라엘 테바(Teva)와 미국 리제네론(Regeneron)은 중증 무릎 골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항-NGF 단클론항체 ‘파시누맙’(Fasinumab)에 대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