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박원진] 간호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간호법 제정 청원운동이 11일 5시 기준 22만명을 넘겼다. 대한간호협회와 간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는 지금도 국회 앞에서는 1인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집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간호법를 제정해 달라는 요구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간호법 재정에 분명한 지지의 입장을 표했다. 이 후보는 이날 자신의 SNS에 “’저는 국민 옆에 남고 싶은 간호사입니다. 간호법 제정이 필요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일주일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며 “전 국민의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해 간호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명쾌한 답변이었다.
이와관련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2일 성명을 통해 “2년에 걸친 코로나19 대유행은 의료대응을 위한 간호인력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했다”며 “간호인력 양성, 처우개선, 적정배치 등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간호정책을 위한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 국회 계류중인 안보법안에 대해 조속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들어오면 나가는 간호사 ... 간호인력 부족 악순환 반복
인구 고령화, 의료환경 변화 ... 보건의료 패러다임 건강증진으로 바꿀때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만성질환 증가 등 우리의 보건의료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자의 급속한 증가로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의학적 치료에서 건강증진과 돌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런 환경을 간호법 제정 이유로 꼽고 있다.
의료기관이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른 간호인력의 수요는 늘어나고 간호인력이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인력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여전히 간호인력의 수급이 어렵고 이직율도 높아 의료현장의 간호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활동 간호사 수는 4.2명으로, OECD 국가의 평균(7.9명) 대비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간호사 정원은 최근 17년간 2배 이상 증원되어 1만명이 늘었지만 현장에 남아 환자를 케어하는 임상간호사는 매우 부족하다. 면허 간호사 중 직장가입자는 75.4%에 달하지만, 이 중 54.6%만이 보건의료기관 근무하고 있는 현실이다.
2020년 기준 복지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이직율은 15%로 전체 산업군(5.3%)의 3배에 달한다. 특히 신규간호사 이직율은 무려 45%에 달하고 임상간호사의 경우 5년차 미만 비율이 전체 임상간호사의 절반이나 된다. 그만큼 의료현장에 필요한 경력있는 간호사들이 적다는 얘기다. 의료기관의 불규칙한 교대근무, 밤근무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간호사들을 의료현장에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간호인력정책 가격만 통제하는 구악 벗지 못해
간호인력 부족, 환자안전 및 간호서비스 질과 직결된 문제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간호인력정책은 ‘배치는 시장에 맡기고 가격만 수가로 통제하는 구조’를 답습해 왔다. 제도적 안받침이 없으니 인력정책은 수가정책과 구분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그 결과 간호정책이 적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필요한 인력양성과 배치, 질향상을 우선하기 보다 수가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계속되는 이직은 간호인력의 숙련도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숙련도 높은 간호인력의 부족은 결국 환자안전과 간호서비스의 질 문제를 지속적으로 야기하여 왔다. 그만큼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이와관련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9월 2일 보건복지부와의 노정교섭를 통해 간호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정책들을 정비하고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간호사 등 우선순위를 정하여 적정인력기준을 마련·시행(2022년부터)하는 한편, 간호등급제도를 간호사 1인당 환자수(ratios) 기준으로 개편(2022년)하기로 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전면 확대(2023년부터 5년간), 예측가능하고 규칙적인 교대근무제도의 개편(2022년 3월부터), 불법의료 근절 및 업무범위 명확화 등도 당시 합의사항이었다.
“9.2 노정합의 이행 ... 결국은 간호법이 대안”
간호업계 관계자는 헬스코리아뉴스에 “9.2 노정합의는 사회적 합의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이행 의지가 중요하며, 이를 점검하기 위한 섬세한 이행계획 수립도 빼놓을 수 없다”며 “한편으로 노정합의 이행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법과 제도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간호법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채 현재 관련 상위임(보건복지위원회)에 묶여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간호업계는 현재의 간호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기관내 적정 간호서비스 제공을 위한 적정 배치기준(ratios)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간호법을 통해 엄무범위와 협업체계의 정책방향을 거버넌스를 통해 만들어가고(간호정책심의위원회) 필요한 배치기준(Ratios)를 결정짓고(적정인력 기준 마련) 그에 따라 적절한 양성과 적절한 배치가 이루어지도록 정책방향 수립(간호등급차등제 개편)을 한다면 9.2 노정합의를 더욱 속도감 있게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발의된 간호법안의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과의 중복성을 극복하기 위해, 간호종합계획을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에 따라 수립되도록 명확히 한다거나, 간호정책심의위원회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상의 보건의료인력심의원회 소속의 분과위원회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조속한 법안논의 여부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간호법은 모두 3개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 등 여야 국회의원 94명이 이름을 올려 발의한 것이다. 이들 법안은 지난해 8월 공청회를 거쳐 11월 24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까지 거쳤지만 이후 법안 처리와 관련,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처리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간호법은 간호사 위한 법 아닌데, 왜 통화 안되나”
“국회의원들, 의료계 눈치 보느라 법안처리 의지 없는 것”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업계는 그토록 많은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동참해 놓고도 입장 조율이 늦어지는 것은 법안의 처리에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의료법 체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대한의사협회와 간호인력 기준 등에 대한 부담을 가지는 대한병원협회 등의 반대에 부딪혀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이처럼 국회 통과가 늦어지자 최근 잇따라 답답한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보았듯 재난적 의료위기 상황에서 간호사 등 의료인력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하게 깨달았다”며 “이것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의 이익을 위한 법이 아닌데도 왜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합리적이지 않은 갈등, 원칙에서 벗어난 갈등은 국회와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 간호법 제정은 국민 그리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옳은 길로,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법안을 제정하면서 직역간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섬세한 조정작업은 필요하곘지만, 이러한 조정을 위해 법안의 논의 속도를 늦추는 일은 안된다”며 “필요한 법률인만큼 빠르게 논의하되, 정부 또한 법안에 대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합리성에 기초한 법안조율 작업을 하면 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노조는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조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해결을 미루는 모양새는 국회와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며 “직역간 갈등에 대해 국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대안을 마련해서 조속히 간호법을 제정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의 간호대학생들은 조만간 간호법 제정이 되지 않으면 간호사 국가시험 거부 및 동맹휴학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연 이재명 후보까지 나서 지지를 선언한 간호법 제정은 조속히 이뤄질 수 있을까. 간호업계는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