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베트남 의약품 입찰 등급 유지 '속사정'
[잠망경] 베트남 의약품 입찰 등급 유지 '속사정'
현지 정부, 자국 산업 육성 기조 ... 외국 제약사에 보수적 입장

"PIC/S·ICH 가입에도 반영 안 해줘" ... "최초 개정안서 PIC/S 삭제"

"최종안 보니 1등급 조건에선 ICH 가입국도 빼버려"
  • 이순호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9.07.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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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한국이 베트남 의약품 공공입찰 등급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을 상대로 한 연간 의약품 수출액이 2000억원을 웃도는 만큼 국내 제약사들에 희소식이다. 

결과가 좋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제약바이오산업협회 등 유관 기관이 여러 차례 베트남 정부 및 제약 단체들과 접촉해 사태 진화에 나섰고, 지난해 6월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베트남 총리와 만나 해법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당초 베트남은 무엇 때문에 한국의 의약품 입찰 등급을 낮추려 했을까? 그리고 입찰 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업계 일각은 일부 국내 제약사들이 일탈 행위를 벌이는 바람에 베트남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인 H사, M사, K사 등은 베트남 현지 에이 전시를 통해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서류를 날조하거나 거짓으로 명기했다가 적발됐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해당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회사 측은 임원급 관리자를 파견해 허위 서류 등과 관련해 소명 절차를 거쳤다.

국내 제약사들의 이 같은 행위가 베트남 정부의 한국 의약품 입찰 등급 조정 방침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베트남의 제약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베트남이 자국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명목 아래 외국 제약사에 보수적인 자세로 돌아선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38억달러(한화 약 4조4783억원)에서 지난해 59억달러(한화 약 6조9532억원)으로 55%가량 성장했다. 도시화와 함께 경제성장에 따른 의약품 수요 증가 등으로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자국 제약사를 육성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의약품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실제 지난 2017년까지는 현지 업체가 자체 생산한 의약품보다 수입 의약품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지만, 지난해에는 자체 생산 의약품의 비중이 수입 의약품을 넘어섰다.

식약처의 한 관계자는 "지금 베트남이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트렌드로 계속 바뀌고 있다. 제약산업도 마찬가지"라며 "시장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자국 산업을 더 크게 육성하려는 기조로 모든 정책이 가고 있다. 평가 기준들도 다 새로 마련하고 규제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이미 수년 전부터 외국 제약사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한국이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에 가입했는데도 베트남이 이를 입찰 등급에 반영하지 않는 바람에 한동안 최하 입찰 등급인 5등급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PIC/S에 가입할 당시 베트남은 자체적으로 인정하는 별도의 PIC/S 가입국을 리스트로 만들어 갱신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한국의 경우, 2014년에 PIC/S에 가입했는데 베트남 리스트에는 한참 뒤에야 반영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것도 한국이 베트남 정부에 어필해서 된 것"이라며 "2015년에 (베트남이 한국을 PIC/S 가입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아 베트남에 계속해서 어필했다. 그 결과 2015년 말께 베트남으로부터 한국을 PIC/S 가입국 리스트에 올렸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PIC/S뿐 아니라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가입 당시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이 지난 2016년 개정한 '베트남 공공의료 시설의 의약품 공급 입찰'에 따르면, ICH와 PIC/S에 모두 가입했거나, ICH 가입국이면서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EU-GMP 인증을 받아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ICH 가입국이 아니지만, EU-GMP 혹은 PIC/s-GMP 기준을 충족시키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은 입찰등급 2등급이었다.

한국은 지난 2014년 PIC/S에 가입했고 베트남 정부가 이를 2015년 말경 반영해 2016년부터 입찰등급 2등급을 받게 됐다. 이후 지난 2016년 11월 ICH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한국은 ICH와 PIC/S를 모두 가입한 국가로, 베트남 입찰 등급 1등급 취득 조건을 만족하게 됐다.

그러나, 베트남은 자국의 ICH 가입국 리스트 갱신을 지연하며 한국의 입찰 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ICH에 가입한 뒤 이에 대한 자료와 증명서류 등을 모두 보냈고 현지 정부와 미팅도 했다"며 "그러나 돌아온 답은 '우리 ICH 가입국 리스트에 한국이 올라있지 않다'였다. PIC/S 때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어필했다. 그 와중에 베트남에서 입찰 등급을 다시 개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베트남 정부의 반응은 "아직 베트남의 ICH 가입국 리스트에 한국이 올라와 있지 않은 데다 어차피 입찰 규정이 바뀔 예정이니 1등급으로 입찰등급을 조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베트남이 입찰 규정을 전면 수정하면서 한국의 입찰등급이 다시 5등급으로 내려앉게 된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2017년 7월 베트남이 입찰 규정을 처음 개정한다고 할 때 PIC/S 가입국 조건을 기준에서 빼기로 했었다. 가입국이 너무 많아 다 컨트롤할 수 없으니 직접 평가하겠다는 것이었다"며 "그랬더니 우리나라가 5등급으로 내려갈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한국은 베트남에서 ICH 가입국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으므로 PIC/S 지위까지 적용되지 않으면 더는 2등급을 유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식약처는 베트남 정부와 여러 번 접촉하며 한국의 입찰 등급을 2등급으로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볼 때 등급 조건에서 ICH와 PIC/S를 모두 빼고 자체 평가를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한국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며 "베트남이 가장 신뢰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1등급으로 한다고 쳐도 이들 국가처럼 ICH와 PIC/S 등 국제조화를 다 따르고 있는 한국은 최소 2등급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을 계속 진행해 (입찰 등급 조건에서 삭제될 예정이었던 PIC/S를 다시 집어넣어) 2등급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이번 개정으로 1등급 조건에서 ICH 가입국을 삭제, PIC/S 가입국이면서 EU-GMP 또는 cGMP를 만족해야 1등급을 받도록 했다. 

개정 전 기존 입찰 규정에서는 이미 PIC/S 가입국으로 인정받은 한국이 베트남 ICH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만 하면 모든 국내 제약사가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제약사별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GMP 인증을 따로 받아야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 전보다 1등급을 따내기가 어려워졌지만, 1등급 취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어서 업계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이처럼 한국이 어렵사리 입찰 등급을 지켜냈지만, 베트남이 자국 제약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이상 향후 또다시 입찰 규정에 손을 댈 가능성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은 여전히 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계속해서 외국 기업에 배타적인 개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만들지 못하거나, 국내(베트남)에 들어오지 않는 의약품이 있다. 베트남도 이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입찰 상위 등급 시장은 자체 평가로 전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17일 '베트남 공공의료 시설의 의약품 공급 입찰' 규정 개정안을 확정·공표했다. 영문판을 함께 공개했던 지난 2016년 개정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베트남어로만 규정을 공개해 식약처가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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