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 제도적 한계 때문에 ..."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 제도적 한계 때문에 ..."
[인터뷰] 핵의학 대가(大家) 서울대학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

"방사성 미사일 치료법, 진단만 허용 환자 치료에는 쓸수없어"

"희귀암 환자 등 살리기 위해 외국으로 보낼 때 마음 아파"

"국내 학문 수준 높고 IT 기술도 탁월 ... 한국 핵의학 미래 밝아"
  • 서정필 기자
  • hustledoo79@gmail.com
  • 승인 2019.05.27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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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기자 ] "생소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생길 수 있고요. 오늘 이 시간이 핵의학이 있는 그대로 잘 알려질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도, 허가 문제에 걸려 쓸 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수년간 이미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으며 효과도 검증된 종양치료법인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등 당국의 이해부족과 소극적 자세로 국내 환자에게 쓰이지 못해 환자들이 허가된 나라로 힘들게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하는 현실"이라며, 정부 당국을 비롯한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희귀암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연구치료 역량이 충분한데도, 이를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대해 큰 아쉬움을 표했다.  

5월 24일 오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연구원에서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를 만났다. 

 

Q. 핵의학 하면 저부터도 생소한 분야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역시 생소할 것 같은데요. 핵의학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 강건욱 교수(이하 강) : 예 맞습니다. '핵'과 '의학'이 함께 붙어 있으니 대체 이것이 뭐하는 것인지 바로 이해가 힘드실 겁니다.”(강 교수는 연구실 모니터까지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핵의학의 기초 개념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핵의학이란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해 인체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상태를 진단·평가하고 치료하는 의학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의학의 근본 원리는 미량의 방사성 핵종을 이용한 추적자(tracer)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량의 방사성동위원소 추적자를 인체에 넣어서 감마카메라나 양전자단층촬영기(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로 영상을 얻어 진단하게 됩니다. 특히 PET는 CT나 MRI와 달리 방사성의약품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인체의 기능 및 대사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방사성동위원소라면 핵 실험 시 사용하는 우라늄 235처럼 각 물질의 동위원소 중 방사선을 띠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맞는지요?

강 : 예 맞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우라늄 235는 핵 실험에 쓰인다면, 핵의학에서 연구하는 방사성동위원소는 진단과 치료용이라는 것입니다.

 

Q. '방사성' 물질을 몸에 주입한다고 하니 일단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강 :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지만 아주 미량을 정확히 원인이 되는 병변 위치를 추적하는 용도로만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물질이 방사선 요오드입니다. 해외에서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국내에는 1960년대에 도입됐습니다. 방사선 요오드는 베타선과 감마선을 동시에 냅니다. 베타선은 주변의 암세포를 죽이고, 감마선은 몸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전신의 약의 분포를 다 보여줍니다.
 

갑상선암 환자의 방사성요오드 치료후 전신영상

Q. 지난 22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영상진단에 사용하는 동위원소 지르코늄-89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취재하면서 개발자 박정훈 교수님에게 "지르코늄-89로 병변의 위치가 성공적으로 진단된 후에는 진단용 원소를 치료용 원소로만 바꾸어 투입해서 바로 같은 패턴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원리를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강 : 핵의학의 장점은 치료도 되지만 진단도 같이 된다는 점입니다. 다들 학창시절 화학 시간에 '반감기'에 대해 배우셨던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바로 그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진단 시에는 말 그대로 진단만 하면 되니 반감기가 수분에서 길어야 수 시간 정도 동위원소를 투여한 뒤 병변의 위치가 발견되면 이제 약물이 몸 안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수일에서 수십일에 이르는 동위원소로 교체해 몸 안에 투여 합니다.

PET를 이용해 치료제의 인체 내 분포를 치료제를 투여할 때마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항암제는 투약 후 적어도 3개월이 지난 후에 CT나 MRI를 찍고 난 후에야 약이 치료 효과를 거뒀는지 알 수 있었지만, 핵의학은 방사성의약품을 투여하고 나서 2~3일 후 전신 촬영을 통해 투여한 약이 제대로 치료효과를 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측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바로 약물을 투여하는 등 대안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환자마다의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것이지요. 말씀드린 것처럼 진단이나 치료나 결국 같은 원리를 이용하며, 목적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진단은 허용되지만 약물 주입을 통한 치료는 허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대학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
서울대학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

Q. 어떤 경우가 대표적인가요?

강 : 대표적인 병증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신경내분비암입니다. 이 병은 국내 환자 수가 약 1000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희귀질환인데요. 다행히 현재 '루테슘-177 도타테이트'(lutetium Lu 177 dotatate)라는 해당 암세포에 달라붙는 방사선동위원소 약품을 투여해 암세포를 추적 파괴하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법'을 통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방사원 동위원소를 이용해 병의 여부를 진단 받을 수는 있지만, 치료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치료제가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신경내분비암 환자들은 살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이 치료법이 허가된 말레이시아에서 원정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어서(현실적 한계 때문에) 제 환자들을 그곳으로 보내지만 국내 의료진의 역량이 더 좋은데도 그렇게 환자들을 비행기를 태워 보내야 한다는 것이 주치의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현재 저희 서울대학교 핵의학과만 해도 매일 50여 명의 환자들에 대한 PET-CT 촬영을 하고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환자에게는 맞춤형 치료제를 만들어 투여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병원 암센터 지하에 위치한 PET-CT 촬영실에서 주기적으로 사진을 찍고 의료진들은 그 결과를 토대로 그 바로 옆에 만들어진 '방사성의약품생산연구개발실'에서는 실시간으로 해당 환자에게 그 시점에 필요한 약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식약처에서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하는 일부 의약품에 대해서만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다.)

저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형병원들에는 이러한 시설이 대부분 갖춰져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암센터 지하에 위치한 '방사성의약품생산연구개발실'

Q. 딜레마군요. 희귀암치료법을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임상을 거쳐야 하는데 희귀암 치료제다 보니 시장성이 없어서 임상 연구를 진행할 비용을 투자할 만한 기업이 나오지 않는...

강 : 네 맞습니다. 약이라는 게 사람 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FDA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각 국에서 약물을 관리·감독하는 기관들이 필요하고 이러한 기관들의 그동안의 성과들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안전성이 검증됐으며 충분히 국내에서 치료할 역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주객이 바뀐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제도들인데, 도리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치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Q. 혹시 고민하고 계신 대안이 있을까요?

강 : 동정적 치료 즉, 불치병에 걸렸거나 암 말기인 환자가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치료를 포기할 상황에 이를 경우 의료당국이 시판승인 전의 신약을 무상으로 공급해 치료기회를 주는 방법 등으로 일단 절망 속에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효과가 알려지고 관심이 모아지면 당국의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핵의학에서 쓰는 약물의 경우 대부분 반감기가 일주일, 길어야 열흘을 넘지 않으므로 기존 약들처럼 대형 제약사들의 거대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힘들다는 것과 그 약이 환자 치료에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다른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임상연구를 한다는 것이 '시장성이 있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인 현실에서 임상결과만을 근거로 해 약물의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를 다시 한 번 바랍니다.

 

PET-CT 촬영실

Q.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보시는 우리나라 핵의학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강 : 핵의학이란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진료과목들의 연구 성과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인지과학 등 인접학문의 도움을 받아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찾은 방법은 IT 분야 빅데이터 처리 기술 발전의 도움을 받아야 더 많은 환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학문들의 수준도 중요하고 이것들을 융합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탁월한 연구자가 있는지 여부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점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IT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우리 연구에 날개를 달아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가까운 예로 PET-CT영상을 판독할 때 정말 많은 양의 데이터가 판독돼서 현재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빅 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달되면 처리 시간도 빨라질 뿐더러 화질이 낮은 사진도 딥 러닝을 통해 자동으로 고화질 사진으로 변환할 수 있어 또 다른 차원이 열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취재 후...

인터뷰 중간 잠시 다른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우며 잠시 이야기가 끊어진 순간, 강건욱 교수에게 왜 다른 분야가 아닌 핵의학을 세부전공으로 골랐는지 물었다. 그의 원래 꿈은 공학도였다고 했다.

"원래는 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요. 가족, 친지들 의견 따라서 의대에 진학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 후에도 환자만 보는 분야 보다는 공학과 접목할 수 있는 영역이 없나 고민을 하던 차에 본과 3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데 이명철 교수님께서 당시 우리나라에 생소하던 '핵의학' 분야에 대해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이거다' 했어요. 그 당시에는 내과 안의 '핵의학 전공' 이었는데 지금은 핵의학과로 독립됐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옆 암센터 건물 지하에 있는 PET-CT 촬영실과 '방사성의약품생산연구개발실'로 이동하면서 강 교수는 "우리(핵의학 의사)들은 의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인지과학 등에 대한 최신 흐름을 모두 파악해야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각 전공자들과 함께 스터디 모임을 갖는다"며 "이런 노력들이 환자 치료에 실제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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