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동근 기자] 보건복지부가 '낙태죄'를 '비도덕'의 범주에 포함시키자 산부인과의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합법화 될 때까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지 않겠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비도덕적인 것일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법은 인공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는 부모에게 유생학적·유전적 정신장애 또는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되는데, 이 범위가 매우 좁다. 다운증후군도 허가 대상이 안 되며, 일반적으로 유전형질이 태아에게 유전되는 것이 확실한 경우에도 정신장애만 인정된다.
그 외의 경우는 모자보건법을 통해 근친상간, 강간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와 임신 중독 등의 사유로 산모가 위독할 경우, 몇몇 전염병을 가진 경우인데, 근친상간이나 강간은 산모가 숨기려 하는 경우가 많아 입증이 쉽지 않고, 전염병의 경우도 태아가 전염병과 무관하게 기형아일 때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매우 협소한 합법 인정 범위만을 갖고 있다 보니 인공임신중절을 합법적으로 시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수술을 해주는 산부인과를 찾을 수도 있고, 2005년 복지부는 실태조사 결과 1000명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하루 평균 약 3000명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고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로 처벌받은 의사는 2013~2017년 사이에 21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반쯤 사문화 됐던 '낙태죄'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우선 최근 여성계의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 때문이다. 여성계에서 인공임신중절의 합법화와 인공임신중절약인 '미프진'의 합법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청와대 청원에도 올랐고 20만명이 서명, 조국 수석이 지난해 11월 임신중절 실태 조사 재개 및 상담 지원, 피임 교육 체계화, 비혼모 지원 등 비롯한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다시 논란이 된 것은 17일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유형을 구체화하여 처분 기준을 정비하는 내용의 행정처분 규칙을 시행하면서부터다. 이 규칙에서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시킨 것이었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의사들, 특히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복지부의 고시가 철회될 때 까지 낙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점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따지고 보면 반쯤 사문화 됐던 법을 복지부가 '비도덕적'이라는 카테고리에 집어 넣음으로써 발발한 것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이 과연 비도덕적 행위인가를 따지기는 매우 어렵다. 도덕적 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나라에 따라서 허용하기도, 안 하기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종교계에서 반대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문제로 한정 지어야 할 것이고, 결국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낙태가 죄냐, 죄가 아니냐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를 따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이 문제는 현재 논쟁이 진행 중이고, 지난해 2월부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떨까.
3개월, 혹은 6개월 전까지 가능 등의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은 대부분 합법이다. 반면 브라질, 태국, 아르헨티나, 페루 등은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게 불법으로 교정하고 있으며, 모나코, 필리핀, 칠레, 등은 강력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단순히 "낙태는 위법"이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비도덕적 진료행위'라는 범주에 넣어 인공임신중절은 위법이라고 밝혔으니 당연히 산부인과의사들은 강력하게 반발 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보면 다른 방향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즉,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야 낙태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인공임신중절 수술 비 합법화 및 처벌은 수많은 비혼모를 양산할 뿐이고, 비혼모에 모질고, 경제적 어려움이 반쯤 강제되는 상황에서 그만큼 많은 비극을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에 15세에 강간을 당한 학생이 검사가 인공유산 지휘를 거부하자 애를 낳은 뒤 자살하는 사례도 발생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정부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종교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합법이지만, 낙태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비교적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산모의 건강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는 "여성의 건강권을 증진시키고, 나아가 실질적인 인공임신 중절률 감소를 위해서라도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의협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이 필요한 한국 여성들은 의학적 표준진료지침에 따른 시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고발을 두려워해 병원은 여성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원시키기도 하며, 의무기록조차 남길 수 없어 여성들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도덕'을 운운한 것은 결코 도덕적으로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