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주치의제, 왜 좋은가
전국민 주치의제, 왜 좋은가
  • 곽정숙 의원
  • admin@hkn24.com
  • 승인 2008.12.0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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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전국민 주치의제를 도입하자니까 주변에서 묻는다.

“주치의제를 도입하면 지금처럼 병에 따라 좋은 의사를 골라갈 수 없잖아요.” “주치의는 의사 아닌가요? 의사를 어떻게 믿어요? 돈 벌려고 과잉진료 할 수도 있잖아요.” “주치의제를 하려면 가정의학과가 많아야 하는데 지금 의사 수로 가능할까요?”

역으로 묻고 싶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느낄 때 편안하게 상의할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나의 진료기록을 모두 알고 있고, 내 몸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필요할 때 건강 관리를 해주는 의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어느 과 진료가 필요한지 몰라서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지 않고 내 몸의 증상을 얘기하면 알아서 진료해주고, 필요하면 전문병원으로 연결해주는 의사가 있으면 정말 좋지 않을까요?” “때놓치기 쉬운 예방접종을 챙겨주고 형식적인 건강검진이 아니라 검진부터 진단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면 정말 살맛나지 않을까요?”

주치의제,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한다

흔히 주치의라 하면 대통령이나 재벌을 생각하곤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모든 국민들이 주치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개인, 혹은 가족단위의 주치의를 지정하고 주치의를 통해 건강검진, 예방, 1차 진료까지의 기본적인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한다. 좀 더 전문적인 진료가 필요할 경우 역시 주치의를 통해 2차, 3차 의료기관을 이용하게 되고, 이 역시 주치의의 관리 하에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주치의는 나의 건강상의 모든 문제를 알고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국민들은 질환의 중증도와 관계없이 무족건 크고 좋은 병원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감기환자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와 과잉처방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예방의학보다는 치료중심의 의료행위로 사회적 의료비용이 증가하는 것 역시 문제다. 도시와 지역간의 의료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도시 지역 의료기관들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농어촌 지역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의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바로 ‘주치의제도’ 인 것이다.

주치의제, 의사단체 반발로 무산

때문에 그간 주치의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은 10년이 넘게 진행되어 왔다. 1995년부터 주치의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으나 의사단체의 반발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1997년 주치의제를 대선공약으로 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이라는 의제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다. 이후 주치의제 도입의 필요성과 도입방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으며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주요 정당 후보들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정형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역시 2008년 국정감사에서 주치의제를 요구하는 본 의원에게 ‘주치의제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주치의제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해결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은 높지 않다. 또한, 의료계의 반발 또한 녹록치 한다.

주치의제, 보건지소부터 실시하자

때문에 주치의제를 시행하는 데 있어 점진적이고 우리 국민의 정서에 맞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일단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도시 및 농촌의 보건지소부터 실시하고 민간에 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도입해야 한다.
일시에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하는 방식보다 주치의 등록제 참여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법으로 처음에는 원하는 국민과 의사만 참여하도록 하고 전체로 확대해 나가는 방향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의사의 경우 전문과목이나 전문의 취득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일차 진료 의사에게 허용하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에게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의료계의 반발도 지금보다는 적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위해 주치의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는 홍보사업과 함께 환자와 의료인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계를 설득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 역시 필요하다.

주치의제는 왜곡된 우리사회의 의료체계를 바로 잡고, 의료계와 국민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국민 모두가 주치의를 갖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한다. 본 의원을 포함, 민주노동당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곽정숙 의원 인사말>

평등세상, 행복세상 꿈꾸며

저는 군인장교이셨던 아버지와 순전한 어머니 사이에 세 번째,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가정에 유독 눈이 크고 예쁜 건강한 아이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당시 결핵균 전염이 많았던 탓인지 다섯 살 때 결핵성척추염을 앓고 척추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척추 대수술을 받고 수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완전 치료가 되지못하였던 것은 당시의료수준의 한계이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던 것도 일찍 발견하고 전 재산을 넣어서라도 치료하겠다는 부모님의 의지가 있었기에 신속히 대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나와 똑같은 질병으로 치료를 전혀 받지 못하고 병원조차 가지 못하여 결국 주저앉게 된 중증장애인들이 많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과 무지는 장애를 키우고 우리네 삶을 힘들게 하였던 거지요.

학창시절은 샛노란 얼굴로 뛰지 못하고 겨우 걸으며 아주 병약하게 보냈습니다. 운동장을 뛰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체육시간엔 교실을 지키고, 소풍날엔 집에서 쉬는 것이 당연하였지요. 친구들이나 언니, 동생이 가방을 들어다 주었으며 자주 교실에 쓰러져 어머님께 업혀오곤 했습니다. 결국 휴학을 하기도 하였고 친구들과 상급학교진학에 차이가 생겨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청소년시절 내 인생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무력한 장애인인 내 모습이 부끄럽고 서글퍼 남몰래 베게를 적시곤 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겠다던 꿈도, 의사가 되어 아픈사람들을 치료하겠다던 꿈도 신체적 장애 앞에 무너지기만 했습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부담스런 존재임이 싫었습니다. 가족과 이웃, 나라와 민족에게 아주 유익한 사람이고 싶었지요. 그런데, 신체적 정신적 연약하기만 하고 그렇지 못한 내 인생이 절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엄하셨지만 마음이 여리시고 예술적 재능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때 영산강에서 아버지와 함께 멱감고 놀던 기억, 과제약속을 지키지 못해 딱 한 번 손바닥 매를 맞았던 기억, 자라서 기대했던 재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의사진단에 눈물 흘리시던 모습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교육열이 유독 크셨지만 아픈 딸은 공부보다 건강이 우선이었기에 진학을 늘 말리셨습니다. 수없는 날 다 큰 딸을 업어 등하교를 시키셨고 눈물의 기도로 딸을 키우셨습니다.

중학교 때 점심도시락 대신 라면을 끓여 식을새라 가슴에 품고 오셨던 모습 생각하면 그리워 눈물뿐입니다. 이렇듯 과한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그럴수록 내 눈엔 장애인이라는 표징이 전부로 보였고, 삶의 목표가 부재해 자신감을 갖지 못한 체 더욱 허약해지기만 했습니다. 자연히 내성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였지요. 스무살이 될 때까지 대중목욕탕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등이 굽어 나온 모습 벌거벗어 보일 수 없었고 따가운 시선에 설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스무살, 그렇듯 절망과 고통에 있을때 성경을 읽게 되었고 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내 모습이 창조주의 걸작품이며 멋진 미래가 계획되어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장애인, 괜찮은 것이며 부끄러운 것도 무능력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비장애인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하루하루를 새롭게 열심히 사는 행복한 장애인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집중되었었던 나의 시각은 타인에게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탓으로 절망만하고 있는 다른 장애인들의 마음을 보기 시작했고 그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인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을 버리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당당하게 살아가자며 그들과 아주 구체적으로 공동체생활을 하며 삶을 나누고 공유하였습니다. 나의 장애는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나의 장애인인권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성장애인,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중 하나일 뿐이거늘 다중차별의 대상이었고 무력함으로 짓밟히는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에 있어서는 않되는 죄악이며 모두의 불행이기에 당사자스스로 차별에 저항하고 평등권리를 찾아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삼십 여년이 지나고 국회라는 권력을 통해 확실한 정책으로 평등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을 요구받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국회의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전혀 준비하지 않은 어쩌면 정치에 문외한이었기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 그리고 성실한 삶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 인생여정의 삶의 방식대로 의정활동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 여기며 배움에 임하고 있습니다.

진짜 행복은 돈에 있지 않으며 천하인간으로 존중받음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멋진세상은 가장 연약한 사람이 행복할 때 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세상을 위해 저는 가장 연약한 자의 편에 설 것입니다. 그 편을 해하는 잘못된 것을 제거하고 좋은 것을 창조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편에 선다고 하지만 늘 시위에 앞장서 거칠고 냉차며 과격하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국회의원 후보가 되고 민주노동당원이 되어 들어와 보니 서민중심, 약자중심의 따뜻한 정당, 한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민주정당, 힘있게 변화를 추구하는 진짜 진보정당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석을 가졌지만 민중의 뜻을 가진 거대 정당으로 18대 국회를 이끌어 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노동자, 서민, 장애인등 약자, 소수자, 전체국민이 국회의원임을 잊지않겠습니다.

늘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최우선으로 그 뜻을 따르는 국회의원, 땀흘리는 정치노동자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 18대 국회의원 곽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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